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도시설계, 성찰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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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2020 서울디자인국제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발표자: 박소현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상황을 겪으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보건기구 (WHO) 공식 통계로 219개 국가·영토에서 현재 42,966,344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1,152,604 명이 사망했으며. 우리나라의 누적 확진자는 26,043명, 사망자는 460명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코로나 19 대응 방식에 있어서는 해외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가 이번에 경험한 소위 “K-방역”의 성공 요인으로는 “빠른 역학조사, 중앙 집중형 행정처리, 유연한 재정관리” 등이 자주 언급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 통제의 핵심요소로 “국가 전체의 감염병 관리 계획과 민간 부문과의 협력, 엄격한 접촉 추적, 유려한 의료시스템과 정부 주도의 커뮤니케이션”을 꼽는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지고 지방정부 및 민간 기관과 긴밀히 협업하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과업을 추진하는 것에 우리 사회와 관료 조직은 매우 익숙해져 있고, 능숙하게 수행해 나간다.
이는 그 동안 압축 성장 시대를 지나오며 하향식의 대규모 개발 방식으로 지어진 우리 도시가 상향식의 주민 참여형 소규모 재생 방식으로 디자인 해법을 모색하는 최근의 도시설계 노력을 새삼 다른 각도에서 성찰하고 전망하도록 자극한다. 지난 20년 간 이름을 바꾸며 진행되어 온 정부의 유사한 여러 사업 현장에서 ‘주민 주도로 차근차근 한다’ 소위 ‘slow & bottom-up’ 담론은 실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수사였고, 도시재생뉴딜, 어촌 뉴딜, 생활soc, 스마트시티, 그린 리모델링 등 여러 사업들이 지금도 행정 주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K-방역의 성공 요인에서도 확인했듯이, 우리 사회가 잘하고, 자랑할 만 한 것 중에는 정부 주도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과 전문가 주도의 빠른 공간 해법이 있었다.
중앙 정부 주도의 하향식 시스템이 가진 신속한 해법 모색과 구현의 특장점을 살리면서,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주민참여 도시설계 접근 방식을 역설적으로 새로이 정착시키려면 어떤 타협점이 모색되어야 할까? K-방역의 성공 경험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럽지만 혹여 강한 행정력, 신속함, 통제, 개인의 희생 등의 속성이 주민 참여형 도시설계 계획에 내재해 있는 민주주의, 인권 등의 여러 기본 가치와 충돌하는 불가피한 양상을 어떻게 중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해보려 한다.
우리가 도시설계를 해 온 방향에 대하여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아우리(Architecture and Urban Institute, AURI)]
아우리(Architecture and Urban Institute, AURI)는 지난 2007년도 설립 이래 우리나라 국가 건축과 도시 공간의 정책을 연구해 온 국책연구기관이다. 건축, 지역 재생, 도시·설계, 스마트·녹색, 공간 문화 연구단으로 구성되어 지난 14년간 연구를 진행해왔다. 또한 건축·도시정책 정보센터, 보행환경연구센터 그리고 최근에 생긴 고령친화정책 연구센터 등 총 11개의 센터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서구의 이론도 반영하여 우리나라 공간 정책에 대한 장소 기반 서비스를 연구한다.
[사회적 변화와 건축 도시 공간 설계의 흐름]
산업혁명에 이어 근대화를 지나 정보혁명이 일어난 이후 ‘지속 가능한 도시’는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도시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근대화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압축 성장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해왔고, 이어서 전개된 성장, 개발과는 또 다른 가치 추구 시대의 도래는 청계천 일대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상징적으로 대변되고 있다.
60년대 70년대에는 가난과 폐허가 된 도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당면과제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도시를 지어야 했다. 이후 국민소득이 약 2만 불을 달성했을 무렵부터 더 이상 삼일 빌딩과 고가는 건설적 도시의 상징으로 공감 받지 못했고, 오히려 도시 경관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인식되었으며 청계천에 다시 물을 흘리는 것이 상징적 가치를 갖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2020년이 되었고, 과거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적용되었던 도시 설계를 위한 해법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집 짓기, 재개발, 재건축 시대를 지나서 최근에는 소위 ‘재생’이라는 다른 유형에 접근하고 있다.
[도시공간 설계 패러다임의 변화]
코로나19 시대 이전에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도시공간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화의 흐름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개념적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예를 들면, 이전에는 소품종 대량생산 등 주로 성장 위주의 건설 시대를 겪었다면 지금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변화하여 가꾸고 재생하는 분배의 가치를 성장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균형의 도시를 만들어보고자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동차와 물류의 빠른 이동보다 보행자와 사람이 존중 받는 도시의 개념으로 전환되어 왔고 이 큰 변화의 축은 오늘날 도시의 가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성장 친화적 태도 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주민 주도형으로 보행자와 사람 중심의 문화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도시로 만드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개념을 모두 포용하는 단어로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명제를 들 수 있는데 우리는 모두 이를 인정하고 공감 하고있다.
우리나라는 주택 200만 호 건설과 같이 양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여온 시대를 지나서 ‘살기 좋음’ 즉,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라는 철학적인 화두를 사업의 목표로 삼으며 우리는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2007년도쯤부터 행정안전부가 추구했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는 주민 주도로 지역사회가 원하는 모습의 지역 활성화를 이루어간다.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파트너십을 이루어 간다’라는 목표는 지금 읽어도 납득이 되고 공감이 가는 목표이다. 이 이후로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파트너십을 이루어 가는 다양한 지역 사업들이 있었다.
마을 만들기와 같이 사회 운동으로 전개되어 온 내용들이 국가의 제도나 법령으로 제도화되면서 좀 더 보편화되면서 도시 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중요시하는 노력들이 특별법까지 통과되었고, 재생이 좀 더 구체적인 정부 사업으로 진행되도록 제도가 마련되었다. 제도는 이전에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지역의 역량 강화,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역 사회의 활성화를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도 함께 고려한다. 따라서 이전과 다른 방식의 주민 참여, 주민 주도의 지역 만들기, 도시 만들기, 우리 생활 환경 만들기 등이 제도 안에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제도는 구축되었지만 현장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 또한 많이 들려왔다. 주민 주도의 참여형 계획은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라고 여겨졌던 이전 패러다임의 요소들은 작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여형 프로세스는 이해관계자가 서로 인내하고 수용하며 천천히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끊임없이 고민하거나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에 대응한 K방역을 통해 되돌아 본 한국의 장점]
우리는 참여형 프로세스의 어려움을 겪고 고민하던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변수에 직면했다. 아마도 많은 시간이 지난 먼 미래에도 2020년은 특별한 해로 회자될 것이다. 상단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전염병 사태는 2020년 초에 점진적으로 시작되어 특정 시점에 크게 확산되었다. 현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려 및 위험 사항이 존재하고 있고, 무엇보다 일련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아왔던 선진국인 유럽과 북미는 코로나 19에 대한 초기대응이 미비하여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안타까운 상황들이 속속 발생하였다. ‘선진 국이라고 생각하여 레퍼런스로 삼던 이 도시들이 왜 이렇게 당황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점과 동시에 놀라움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반면에 한국은 코로나 사태에 비교적 성공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방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살펴보니 선별진료소 설치, 드라이브 쓰루(Drive through) 등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들을 마련해 나가고 있었고, 이는 도시를 설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여러 논문에서 K-방역의 성공을 중앙 집중의 행정력, 국가 계획. 차원에서 의료 체계를 마련했던 방식, 의료 보험 제도 등 여러 재정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으로 보고있다. 또한, 빠른 3T; 테스트(test-검사), 트레이스(trace-추적), 트리트먼트(treatment-처치) 프로세스가 신속하고 원활하게 돌아가는 양상을 성공의 요소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인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장점이다.
참여형 계획을 중시하며 ‘천천히 해야 한다.’, ‘주민 주도로 해야 된다.’라고 외쳐왔지만 막상 현장에서 이들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안타까웠고, 특히 우리가 잘하는 중앙 집권형 행정력과 중앙과 지자체가 협력하는 신속한 체계, 우리 사회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의 속성들을 타파해야 할 특성으로만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들은 우리의 장점 중에 하나이자 우리가 압축 성장의 시대를 겪으면서 키워온 사회 고유의 습성이라 생각된다. 이제 이러한 특성을 참여형 설계에 적용하여 창의적으로 연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동시에 지금 주민 참여형 도시 만들기의 사업들을 행해 온 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적 속성들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보고, 근원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부분에서의 성찰을 통해 제3의 새로운 해법 도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자발적 주민 참여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들의 현실성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참여형 공공사업에서 주민과 공공의 전문가들이 새롭게 찾아내야 할 2020년 이후에 역할의 조건들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놓치고 싶지 않고, 또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이전에 우리가 도시의 새로운 참여형 사업을 진행했을 때에 다수의 성공사례에서 여전히 공공의 개입이 없었다는 현실과 이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또한 큰 숙제의 화두가 될 것이며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주민 주도의 공간 디자인 해법을 내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자성이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압축 성장 시대를 성공적으로 지내온 우리가 알게 모르게 품어왔던 우리 공간 문화 조성의 속성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참여형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앙집권형의 하향식 방식이 가지고 있는 우려를 언급한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향식의 중앙집권적인 장점들의 속성이 참여형 그리고 상향식 접근(bottom up approach)과 함께 결합했을 때 시너지(synerge)효과를 내면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K-방역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이자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새로운 화두는 우리가 그동안 막연하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아이디얼(ideal), 규범, 과정과 원칙들이 우리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검토하고, 현재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근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제3의 방향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화두는 지속 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개념적으로는 알고있지만 현실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을 그저 당연하다고만 여겨왔다.
이제는 그 당연함에 의심을 품고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포용적이고 안전하고 회복력이 있으며 지속 가능한 도시와 주거지가 참여형 공동체 계획 방식으로 조성되고 향유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본 논의가 참여형 공동체 설계 시 근원적으로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 인권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도시 설계 방안 고민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