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디자인과 모두를 위한 도시

  • 주유민
  • KDI 국제정책대학원 부교수

2013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국제세미나​1)​에서는 그동안 서울시와 세계 주요 도시의 유니버설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소개와 논의가 이어져 왔다. 유니버설디자인은 Ron Mace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한 개념으로, 나이, 장애 유무, 또는 인생주기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기능적이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뜻한다.​2)​ 따라서 유니버설디자인은 도시 계획 및 디자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일부 건강한 주요 경제 활동층만을 위한 도시 공간이 아닌, 노약자, 장애인 등, 모두를 위한 도시 만들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동안 탈산업화 시대에 팽배했던 신자유주의적 기업주의 도시(entrepreneurial city) 개념은 자본 유치를 위한 도시간의 경쟁을 중요시 했는데,​3)​ 이는 모두를 위한 도시 취지와는 거리감이 있다. 보다 높은 글로벌도시(global city)랭킹을 취득하고 도시성장을 위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도시들이 고군분투해왔으며, 때로는 사회적 약자보다 국내외 자본의 니즈(needs)에 더 충실히 대응하는 모습도 보여줘 왔다. 따라서 유니버설디자인은 경쟁적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을 화두로 꺼내어,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다 더 따뜻하고 친절한 도시를 도모해볼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중요 글로벌도시 서울시가 유니버설디자인과 사회혁신 디자인을 주제로 하는 국제포럼을 개최하는 것은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한국은 20세기 후반,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강한 정부 아래 성장주의 중심 도시개발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정부 주도형 도시화 경험은 효율적인 도시개발을 가능케 했지만, 여러 범지구적 환경문제와 증가하는 빈부격차, 젠더 및 세대 간 갈등 등 여러 사회문제를 대면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공감 받기 어려운 방식일 수 있다. 탈산업화 시대를 맞이하며, 새로운 도시 경쟁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보다 다양해진 시민들의 니즈에 맞추어 새로운 도시발전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서울시는 2007년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에는 당시 다소 생소했던 유니버설디자인 개념을 정책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4)​ 성장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도시 속 일상생활을 보다 더 깊이 관심 있게 도시정책에 반영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구체적으로 유니버설디자인이 새 패러다임의 도시발전 방향에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올해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의 주요 키워드인 유니버설, 연결, 가치생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유니버설디자인에 기반을 둔 모두를 위한 도시를 구상하는데 있어서 세 가지의 연결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물리적, 공간적 연결성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노인, 아이들, 부유층,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친절한 도시공간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물리적 연결성은 필수 요건이다. 유모차와 휠체어가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건물 디자인부터 외부인을 철저히 배제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까지, 공공성이 부족한 도시 환경은 연결이 아닌 차단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모두를 위한 도시는 다양한 계층의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연결된 공간을 뜻하며, 이는 물리적인 접근성 외에도 심리적인 접근성과 문화,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접근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2016년 국제세미나​5)​에서 일본 탄세이샤 박인택 부장은 탄세이샤가 지향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상냥한 공간 디자인”을 위한, hard (물리적 측면), soft (효과적이고 쾌적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측면), 그리고 마음의 (심리적, 감성적인 측면) 유니버설디자인을 소개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공간적 연결성에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마인드웨어가 심도있게 탑재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거버넌스(governance)에 관한 연결성이다. 그동안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국제세미나에서 많은 연사들이 유니버설디자인 거버넌스를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2017년 국제세미나에서 뮌헨 유니버설디자인 연구소 CEO인 토마스 바데는 유니버설디자인은 투명성이 보장되어야하며, 가능한 많은 사람을 참여 시켜야 하는데, 이는 대화를 통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상향식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서울시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2018년 국제세미나에서 김선수 서울시 디자인 정책과 과장은 2014년부터 서울시가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과정을 중요시 하며, 다양한 니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소외 받는 시민이 없는 유니버설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민주도형 상향식 거버넌스는 관료중심적 행정에서 지나칠 수도 있는 시민들의 세밀한 니즈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찾아 좋은 정책방안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게 한다. 


사용자, 즉 시민 중심, 상향식 거버넌스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더 대두되고 있다. 스마트도시 개념에서 널리 언급되고 있는 리빙랩(living lab) 또한, 주민, 기업, 정부, 그리고 학계가 함께 힘을 합쳐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거버넌스를 강조하고 있다. 2015년 국제세미나에서 남민 은평병원장이 언급했던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또한 정책학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갈수록 복잡하고 열려있는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 의제를 만들고 문제를 분석하여 해결책을 만든 후 도입하는 관료중심적 정책 수립 과정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을 수렴하여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하는 디자인적 사고가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적 사고에는 구체적으로 사용자와의 공감(empathize), 사용자의 니즈와 문제점을 정의(define)하고, 기존의 가설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는 아이디어 과정(ideate),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prototype), 그리고 해결책을 테스트(test)해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6)



세 번째 연결성은 사회적 연결이다. 모두에게 친절한 도시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게 함으로써 보다 포용적인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에 이바지한다. 도시학에서 저명한 Jane Jacobs는 사람 중심의 작은 스케일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며, 거리의 춤을 연상시키듯 도시 곳곳에 항상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안전하고 건강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이라고 주장했다.​7)​ 유니버설디자인은 누구든 물리적, 심리적으로 도시 공간을 편하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음을 뜻하며, 따라서 이는 Jane Jacobs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도시 모습에 기반이 되는 툴이다. 


오늘날 디지털 전환시대를 가능케 하는 기술(technology)의 발달은 사회적 연결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다. 2017년 국제세미나에서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국가최고기술임원 이건복은 사람들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의 역할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다양성과 포괄적인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술을 통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 공간을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역량을 확대시켜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디지털 세상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밖에 나오지 않고, 컴퓨터를 통한 소통과 세상 경험을 중요시하면서 더욱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뭉치고 소통하게 되면서 포용성과 다양성이 없는 연결만이 강조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기술과 유니버설디자인의 접목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맺음말로 유니버설디자인을 통한 모두를 위한 도시는 곧 가치생산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Jane Jacobs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도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창업적 실험들이 가능하여 결국 활발한 도시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게 됨을 주장했다.​8)​ 이는 한때 서울을 포함한 많은 세계도시들이 추구했던 창조도시 개념과도 이어진다. 그동안 Richard Florida가 강조했던 재능(Talent), 관용(Tolerance), 그리고 기술(Technology)이 있는 창조도시가 곧 혁신적인 에너지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주장​9)​에 많은 탈산업화를 대면하고 있는 도시 행정가들은 열광했다. 이는 도시경제를 위해 기업 유치에 중점을 뒀던 기존 정책에서 사람과 도시환경에 중요성을 두는 정책적 방향의 전환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창조도시를 추구하면서 결국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가속화시켰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러한 비판 때문에 더더욱 창조도시 정책 과정에 있어서 유니버설디자인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관용이 세 가지 핵심 요건 중 하나인 창조도시는 사실 모두를 위한 포용적인 도시여야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한때는 부모 도움 없이 살기 어려운 작은 아이였고, 언젠가는 늙어서 생활에 불편함을 겪게 될 노인이 될 것 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을 통한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도시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특정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1)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개최된 유니버설디자인 국제세미나는 2020년부터 서울시 사회문제해결디자인 국제포럼과 합쳐져 서울디자인국제포럼으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2) https://projects.ncsu.edu/ncsu/design/cud/about_us/usronmace.htm

3)  Harvey, David. 1989. From Managerialism to Entrepreneurialism: The Transformation in Urban Governance in Late Capitalism. Geografiska Annaler. Series B, Human Geography. 71(1): 3-17. 

4) https://news.seoul.go.kr/culture/archives/509760

5) 앞으로 서울시 유니버설 국제세미나를 줄여서 국제세미나로 표기. 

6) https://web.stanford.edu/~mshanks/MichaelShanks/files/509554.pdf

7) Jacobs, Jane. 1961.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New York: Random House.

8) Jacobs, Jane. 1969. The Economy of Cities. New York: Random House.  

9) Florida, Richard. 2002.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New York: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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