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콘텐츠는 2017 사회문제해결디자인 국제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발표자: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교수)


전 세계 인구 중 하루에 미화로 10불(약 만원)을 소비할 수 있는 인구는 상위 10%이다. 이 말인 즉, 90%는 하루에 10불을 소비할 수 없는 극빈자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80%는 하루에 2불정도 밖에 소비를 못한다. 디자인은 물건을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 판매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를 얼마나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이 디자인에 포함된다. 하루에 10불을 소비할 수 있는 인구인 10%와 소비하지 못하는 90% 중 어느 쪽의 삶에 더 많은 문제가 있을까? 10%의 사람들은 욕망에 대한 이슈가 있을 것이고, 90% 는 니즈에 대한 이슈가 있다. 즉, 생존과 직결되는, 조금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90%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99.9%의 디자이너들은 상위 10%를 위한 디자인만을 하고 있다. 진정한 사회 문제는 그냥 둔 채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문제에만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디자인에 종사하면서 13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프로젝트를 하게 되어 꿈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공허함과 함께 아름답지만 쓸모 없는 디자인 산출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후 사람의 눈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소비를 이끌어내는 디자이너가 아닌,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현재 진행하고 있는 나눔 프로젝트,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V) 지원 프로젝트, 제 3세계를 돕는 시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나눔 프로젝트는 사회에서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자산 상품을 만들어 수익금이 아닌 판매액 전액을 가난한 어린이의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닌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고, 소비자들은 그 물건을 구매하면서 판매금액을 지불하면 전액이 기부되는 것이다. 총 17억원을 어린이들에게 기부했고, 매년 240명의 어린이에게 연간 2천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돈을 쪼개서 여러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 선별하여 끝까지 지원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월드비전이라는 파트너와 함께한다. 월드비전은 전국의 지원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선별하여 꿈과 희망이 있고 열정은 있는데 도저히 자립할 수 없는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수익금을 분배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사회공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도움과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디자이너가 좋은 의도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다.


2005년에는 크로스큐브라고 하는 MP3플레이어를 만들었다. 조그만 십자가 형태의 전개도를 접게 되면 MP3플레이어가 되는 제품이고, 전기를 쓰지 않는 천연 가습기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였으며, 음료를 담으면 자동으로 안에 있는 온도를 알려주는 인터랙션 텀블러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딜라이트라는 키네틱 전등을 제작하였다. 키네틱 전등인 딜라이트는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조명의 형태에서 하트모양까지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조명의 형태일 때 가장 어두운 빛을 내고 하트 형태일 때 가장 밝은 빛을 낸다. 이는 나눔을 하면 세상이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아 제작한 것이기도 하다.


딜라이트 http://idim.kaist.ac.kr/works/D-light


카이스트에 온 10년 동안 디자인 4대 어워드를 52번을 받을 수 있었다. 한창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을 때 2회 수상으로 기쁨을 맛보았는데 10년이라는 단기간에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앞서 말한 90%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디자인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시드 프로젝트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지에 위치한 부마라는 지역은 2008년 기준 8년 동안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에 헤매는 동네에서 시드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었다.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엔쓰로그래픽 리서치를 진행하는데 우리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현지의 도구와 재료를 이용해 지역의 문제 해결책을 함께 만들고 교육한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자립하여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가뭄이 심했던 지역의 물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히 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있는 재료들로 물을 필터링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든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해서 만드는 필터와 지식은 현지의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때문에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해당 지역에서 수급할 수 있는 황토와 홍차의 껍데기 등을 섞어 자기를 만들어 구워냈고, 이 자기 필터로 5급수의 물을 1급수로 거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수인성질환에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을 위험르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 한가지 사례로, 아프리카에는 말라리아로 어린이들이 30초에 한 명씩 죽는다고 한다. 모기향이나 에프킬러를 지원하는 것은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대안을 모색하였고, 우리는 사운드 스프레이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스프레이 통을 손에 들고 2분 동안 흔들면 충전이 되고, 핸들을 누르면 모기가 싫어하는 초음파가 방출되어 반경 5m 안에 모기가 접근하지 않는 원리를 활용하였다. 



2005년 독일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상을 받은 ‘박스 스쿨 (Box school)’이라는 작업이 있다. 이는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전 세계 어디든 고립된 지역에 가져다 펼쳐 놓으면 그 안에 스마트 클래스룸이 생성되어 어디에서든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하드웨어이다. 솔라 패널을 이용해 전기가 생성되고 모든 전자제품에 전기가 공급되며 물을 걸러낼 수 있는 집수와 정수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통신도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를 보며 아프리카의 어린이가 카이스트의 수업을 수강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여러 개의 모듈을 설치하면 규모 있는 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전 세계 어디서든 이 박스 스쿨을 응용하여 교육시설이나 의료시설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 시스템은 한국 내에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소외 받는 지역에 찾아가는 갤러리, 찾아가는 아티스트, 레지덴셜 플레이스 등이 될 수 있다. 또한 아티스트들이 도서지역이나 낙후된 지역에 박스 스쿨을 들고 가서 거주 하면서 주민들과 같이 공동작업을 하는 프로젝트의 구상도 가능하다. 문화 아카데미의 멘토들이 그 공간을 이용해서 청년들을 교육하고 문화나 예술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으며 교육의 공간을 넘어 청년 창업자 및 가난한 아티스트들의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올림픽이 개최 될 때 선수들의 기숙사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이 컨테이너를 숙소로 이용하고, 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전 세계의 가난한 지역에 학교와 도서관을 만들고 병원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80%는 대학에 진학한다. 전 세계 인구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거나 받을 수 있는 인구의 퍼센티지는 상위 1%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큰 수치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면, 이 특혜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한다.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돈을 나누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사회적 갈등, 양극화 이런 문제들은 정부가 아닌 개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자의 형편에 맞는 나눔의 실천이 늘어나길 바란다. 



 

카테고리 관련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