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ial Role of Architects : 인도주의적 활동과 건축활동 간의 균형
세션1. 도시의 오늘-디자인의 실천적 해법을 통한 포용도시
The Social Role of Architects : 인도주의적 활동과 건축활동 간의 균형
_ 반 시게루, 반 시게루 건축설계사무소 대표
제가 재난 관련 주거지, 주거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던 것은 제가 이전에는 특권 계층을 위해서 디자인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돈과 권력을 가시화하고 과시하기 위해 건물을 세우고 건축물을 세우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공공을 위해서 건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난지에 건축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앞의 경우로 건물을 짓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저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난이 일어나면 개발사나 시공 업체들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길 거라고 기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죠. 그래서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재난 후에 발생한 난민들을 지원하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이 건물의 탄생
저는 뉴욕에서 공부를 한 후에 도쿄에 와서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건축 일을 시작하기는 어려웠죠. 당시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예산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목재 대신 재사용 종이를 활용했습니다. 제가 워낙 뭔가를 버리는 걸 싫어하는데, 그때 저에게 재활용 종이가 있었고요. 이를 통해 의외로 종이가 내구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지은 종이관 가건물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1980~90년대 사람들은 환경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환경 친화적인 건물을 만들 목적보다는 낭비하기 싫어서가 더 컸어요. 당시에는 종이가 건물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자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승인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요 구조물은 기존 방식으로 하고, 외관은 전부 종이로 만들었죠. 그래서 안이 비어 있는 종이관을 활용을 해서 외관을 꾸몄습니다. 안에는 화장실이 있는데요. 화장실에서 휴지가 떨어지면 벽을 뜯어내면 됩니다.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 프로토타입으로 제 별장을 지었습니다. 1년 동안 집을 테스트한 후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죠. 제 별장은 종이관으로 지은 첫 영구적 건물인 셈입니다.
독일 월드엑스포 주제관
2000년대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하노버에서 열린 월드엑스포의 주제가 환경이었고요. 당시 사실 재활용 자재를 사용하는 건축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제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현지에서 조달한 종이를 활용해 주제관을 만들었습니다. 엑스포가 끝난 모든 종이를 수거를 해서 재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요. 제가 목재로 박스를 만들어서 이것을 파운데이션으로 활용을 했습니다. 멤브레인 같은 경우 주로 PVC를 사용하는데, 이 또한 종이로 만들었죠. 방수 방제가 되는 종이였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종이건물의 확장
뉴역에 위치한 이동식 미술관입니다. 컨테이너 건물인데, 사실 이동이 용이해서가 아니라 컨테이너는 국제 규격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현지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에서도 컨테이너를 바로 조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3개월 정도 컨테이너를 빌린 다음에 다시 항만에 돌려주었습니다. 또 기존의 커넥션을 가지고 체커보드 같은 형상을 디자인했죠.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도록 했고요. 산타모니카 프로젝트 역시 빌린 컨테이너 건물로 만들었습니다. 재난 지역에 만든 건물 중에는 스리랑카 집이 있습니다. 쓰나미 이후에 스리랑카의 어민 마을이 완전히 없어졌죠. 이곳에 주택을 건설했고요. ‘제프리 바워’ 라는 스리랑카 건축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환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픽처 윈도우도 설치해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밖의 풍경이 그림 한폭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연 환기를 위한 건물
공모전으로 진행한 긴자의 스와치 매장은 자연 환기가 가능한 곳이에요.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건물 안에 7개의 부티크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긴자 지역의 특성상 좁고 깊은 대지의 형태를 활용했습니다. 건물에 4개 층을 만들면서 파사드를 두었고, 누구든 지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고객들은 거리에서 바로 본인이 원하는 부티크로 이동을 할 수가 있고요. 만약 이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거리에서 매장으로 들어갔을 때 1개의 부티크만 볼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통해 7개의 부티크에 자유롭게 접근을 할 수가 있죠. 거의 반 실외 공간에 가까운 공간입니다. 여담으로 섹션 드로잉에만 그려넣은 기린이 실제 건물 안에 없는 것에 대해 스와치 오너가 아쉬워해서 나중에 사비를 털어 기린 조형물을 설치했죠.
2003년 파리 퐁피두 메츠 센터도 자연 환기를 위한 건물입니다(반 시게루와 장 드 가스틴의 협업 프로젝트). 저는 뮤지엄을 도심과 연결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개의 갤러리 튜브를 만들었고갤러리 끝 부분에 픽처윈도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파리의 명물과 기차역 등이 보일 수도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목재 지붕의 모델은 대나무 모자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대나무 짜기의 형태는 육각형과 삼각형이 만나는 방식으로, 지오메트리를 가져가면 커넥션 부분에서 두 가지 요소밖에 없기 때문에 이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런 대나무 모자나 바구니를 보면 이런 패턴을 활용합니다. 이런 패턴을 중복적으로 사용했고요. 철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이 패턴을 중복적으로 사용하고 하나의 볼트로 복잡한 철 구조 연결 없이 지붕을 짰습니다 두 개의 픽처윈도우는 개폐가 가능하고요. 셔터가 올라가면 박물관은 카페, 도시와 모두 연결됩니다. 여담을 하자면 사실 파리에서 사무실 임대는 비용이 많이 들죠. 그래서 제가 테라스나 옥외 공간을 사무실로 이용하겠다고 했죠.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지만 저를 만나러 오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사야만 했습니다. 우리 사무실이 전시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이곳의 유일한 단점이었죠.
CJ그룹의 의뢰로 여주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역시 퐁피두 메츠 센터와 비슷한 지오케트리를 사용했습니다. 퐁피두 메트 센터는 텐셀스트럭처라고 하는데, 여주의 경우 컴프레션 스트럭처입니다. 기존의 목재 조인트 방식 없이 진행했고요. CJ와는 최근 직원 연수 센터도 진행했습니다. 사각 형태의 지루한 강연장을 만들기 싫어서 연수 공간은 지하에 배치했고, 로비는 개방감 있게 구성했습니다. 연못은 목재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스테인리스 스틸 포드 안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목재가 나무를 뒷받침하고 있는 거죠. 일본의 오이타역에 있는 박물관 역시 좀 더 개방적인 형태입니다. 바이폴딩 문을 사용해 거리로 개방할 수 있죠. 이곳은 대나무 공예품이 매우 유명합니다. 그래서 천장도 대나무 바구니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센 강 옆에 위치한 이 극장도 햇빛과 바람은 다 받을 수 있도록 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베니스의 전통 방식을 사용한 모자이크 타일은 햇빛이 어디서 비추느냐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게 보입니다. 내부 좌석은 모두 종이로 만들어져 있고요.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유네스코의 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는 후지산 박물관 공모전 당선작입니다. 저는 후지산을 거꾸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이용해 건물을 냉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냉각수로 생긴 물을 통해서 연못을 만들었고요. 그래서 이 연못에 후지산 모양의 건물이 비춰지는 것이죠. 마치 내가 후지산을 등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위에 마련된 픽처 프레임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후지산을 볼 수도 있습니다.
스와치 본사
스위스에 있는 스와치 본사입니다. 오메가의 박물관도 있고요. 부지가 L자 모양이어서 제가 그 부지 모양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오메가와 스와치의 건물은 개성이 다릅니다. 스와치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만들었고 또 목재를 이용했습니다. ETF 멤브레인을 사용했고요. 천장 같은 경우, 시각적 확장이 거리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하 부분만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들은 목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만 갤러리 프로젝트
이제 대만으로 가볼게요. 갤러리 프로젝트입니다. 사람들이 나와서 정원을 즐기고 어떤 곳에서든 박물관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프랙터루프라고 부릅니다. 프랙털지오메트리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같은 비율의 삼각형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을 프랙털지오메트리라고 합니다. 3D로 되어있는 프랙터럴 루프를 이용하게 되면 마치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공기가 환기되는 것처럼 공기가 자연스럽게 환기되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사실 이 건물은 햇빛이 많이 들어옵니다. 천장 형태 또한 자연스럽게 환기 구조를 띄면서 에어컨 사용량을 10% 줄일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에너지 절감률을 50%나 달성할 수 있었고요.
반투명한 공공화장실
제가 최근에 도쿄 시내에 만든 공공화장실입니다. 사실 공공화장실은 더럽다는 인상이 강하죠. 여성들에게서는 좀 또 치안의 문제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투명한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고요. 누군가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이렇게 반투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곳은 히로시마에 있는 박물관인데요.
여기에 호텔과 레스토랑도 있습니다. 큐브 자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구조이고요, 물 위에 있는 갤러리를 움직이기만 하면 구조가 바뀌는 방식입니다. 전시에 따라 다양한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입니다. 존 헤이가드라는, 저의 교수님의 작품으로부터 또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재난을 치유하는 디자인 사례
1994년에 르완다 대학살 때 200만 명이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UNHCR에서 만든 난민 캠프가 있었죠. 하지만 당시 우기였기 때문에 날씨가 너무나 추워서 사람들이 담요를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와 플라스틱 시트를 활용했죠. 그러다보니 산림 훼손이라는 또 문제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UN에서 알루미늄 파이프를 대신 줬는데, 난민들이 이 알루미늄 파이프를 사고파는 일이 벌어지게 된거죠.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디어를 받아서 이제 재활용된 자재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너무 안락한 임시 거처를 마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난민 수용소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까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국의 회사와 협업을 통해 플라스틱 시트를 주요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다음 1995년 일본 고베의 대지진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90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이재민 수용 시설은 비가 오는 날에는 굉장히 상황이 열악해졌죠.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재민들을 도시 밖으로 유도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난민촌은 점점 슬럼화 되어갔죠. 그래서 저희가 10m 직경에 그리고 40mm 두께의 종이관을 이용해서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멤브레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또 환기가 이루어지도록 했고요. 사람들은 이곳에서 4년 동안이나 살았습니다. 종이관을 이용해서 교회도 만들었고요. 이 장소는 영화관 공연으로 활용되고 있죠. 두 번째 만든 시설은 지진이 발생한 대만에 기부했고 지금까지 상설 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상설 건축물과 임시 건축물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상설 건축물 혹은 임시 건축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저와 함께한 학생들이 만든 임시 건축물도 상설 건축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애정을 가진다면요.
그런데 사실 토마스 헤더윅도 얘기했지만 도쿄든 뉴욕이든 서울이든 20년, 30년 연식의 상설 건물들이는 곳들이 바로 철거됩니다. 수익을 위해 재건축되죠. 그러면 이 건물들도 결국에는 임시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설 건물과 임시 건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8만여 명이 사망한 중국 청두 지진 때 많은 학교들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때 임시 학교를 지었습니다. 중국 학생들과 함께 협업해 현지에서 조달한 나무 조인트와 종이를 가지고 임시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로마 근처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죠. 그때 당시에 로마 시장님께서 임시 콘서트홀을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 도시가 음악으로 굉장히 유명한 도시였거든요. 이 건물 역시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래를 사용했습니다. 건물 안에는 종이관이 있고요. 음향을 생각한 종이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도 자재를 다 현지 조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후쿠시마 대지진이 발생했죠. 일반적으로는 그런 재난이 발생하면 체육관 같은 데서 이재민들이 생활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프라이버시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당시 일본 정부에서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 같은 경우 시장과 시 관계자들이 이미 쓰나미로 사망했어요. 그래서 모든 일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분이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제가 제안한 칸막이를 승인했습니다. 그때 칸막이가 제 역할을 하며 효율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후 일본 정부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이런 제 종이 칸막이를 승인해 주었습니다. 2019년 코로나 발생 이후에도 칸막이는 효과적으로 활용됐습니다. 당시에 의료진이 이런 칸막이가 코로나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15년 동안 조금씩 이 칸막이를 제공하다가 드디어 일본 정부에서 정식으로 이 칸막이를 완전히 승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3층짜리 컨테이너 임시주택도 진행했죠. 임시주택은 4년간 임대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곳이 워낙 살기 좋으니 사람들이 나가지 않고 8년씩 거주를 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크라이체스 뉴질랜드에서도 대지진이 있었죠. 그때 그 지역의 중요한 성당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이관으로 임시 성당을 지었습니다. 저희가 완전히 무료로 제공을 해주었습니다. 지상층의 경우에는 컨테이너를 활용했습니다. 임시 가건물로 지어졌는데요. 관광지가 되면서 역시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2014년, 필리핀 세부에서 있었던 태풍과 지진에도 저는 있었습니다. 일본과 필리핀의 학생들과 진행했는데요, 필리핀에는 산미구엘이라는 아무 유명한 맥주 기업이 있죠. 맥주 상자가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아 요청했는데 거절당해서 어쩔 수 없이 코카콜라 상자를 사용했습니다. 직조된 대나무 시트나 병도 현지에서 조달해 활용했고요. 2015년 네팔 대지진 때는 목재 프레임을 벽돌로 가득 채운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표준에 맞추어 테스트를 했고요. 이 구조를 가지고 집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터키(지난 2월 큰 지진이 발생) 앙카라 학교와 협업해 입시주택 프로토타입을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었죠. 이 구조 역시 임시주택이 아니라 그냥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합니다.
그리고 같은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죠. TV를 보니 상당히 많은 난민들이 폴란드로 유입됐는데 체육관 같은 데서 생활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폴란드 동료 그리고 여러 NGO와 함께 폴란드에서 여러 자재를 수급을 받고 여러 개인과 기업들이 기증한 패브릭을 가지고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이 여러 도시에서 칸막이도 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발전소도 공격해
전기가 끊기는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경량의 스틸 스토브를 제가 찾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요리를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스틸 스토브 100개 정도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리브라는 도시에서는 시장을 만나 학생들과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의 주택을 만들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9월에 제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요. 스타이로폼, 경량의 인슐레이션이 가능한 자재입니다. 여기에 글라스 파이버와 플라스틱을 입혀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사실 이 기법은 선박을 만들 때 사용되는 전통적인 기술을 활용한 것입니다. 일주일 만에 생산해서 제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건설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을 할 수 있었고 전시 중인 상황을 감안하면 좋은 옵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의 시장님께서 병원을 저한테 맡기셨습니다. 해당 도시는 우크라이나 서쪽에 있는데요.
우크라이나 동쪽에서 부상을 당한 분들이 이 도시로 많이 유입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상이 부족했는데요. 그래서 저에게 목재를 사용해서 병원을 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CLT라는 건자재가 있는데요. 사실 유럽에서 가장 큰 CLT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 우크라이나인데요. 원래는 미국과 캐나다로 수출을 하는데 전쟁 때문에 수출을 못하다 보니 이 CLT를 사용을 해서 병원을 지어달라고 한 것이었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우크라이나가 지금 유럽연합에 가입을 하느냐를 두고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 이 우크라이나의 규제에 따르면 이렇게 목재를 가지고 병원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규제를 따른다면 이렇게 목재로 병원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 시장이 특별히 이 건물을 목재로 설립을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목재가 노출되는 이런 디자인이 원래 우크라이나에서는 불가능한데 이번에 가능하게 되었죠.
마르케스 근처 모로코에서 최근 지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뒤에 그곳으로 가서 또 임시주택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갈 예정이고요. 저는 계속해서 재난 지역에서 임시주택을 지을 생각이고, 그 건물이 임시가 아니라 상설주택으로도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