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도시 디자인을 위해 2023 서울디자인국제포럼 - Humanising Cities : 인간 • 디자인 •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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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도시 디자인을 위해 

2023 서울디자인국제포럼  - Humanising Cities : 인간 • 디자인 • 도시 


언뜻, 포럼의 주제가 무척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 주제인가? ’휴머나이징’을 해석하면 ‘인간·인본 관점의 도시’라는 의미인데, 당연하다고 여겼던 이 명제를 이를 상기시킨다는 건 그동안 ‘인간 중심의 도시’가 되기에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4일, 서울시청 본관 8층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2023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은 그런 점에서 도시 디자인을 위한 가치 기준과 기본 담론을 재확인시키는 의미가 있었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이 행사는 장장 5시간에 걸쳐 7명 연사의 강연, 그리고 강연자 모두가 참여한 대담으로 구성됐다. 올해는 헤더윅스튜디오 설립자인 토마스 헤더윅, 재난 건축가로 이름난 반 시게루를 비롯해 코넬대학교 학장이자 하울러+윤(Höweler+Yoon) 아키텍처 공동 대표로 많은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윤미진 건축가가 참여했으며, 국내 연사로는 최소현 네이버 디자인&마케팅 부문장, 마음스튜디오 이달우 대표, 유니크굿컴퍼니 송인혁 공동대표 등이 함께했다.











 

누구를 위한 건축·공간인가

기조 세션자로 나선 토마스 헤더윅은 올해 포럼 주제를 직접 제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헤더윅의 강연은 이번 포럼을 아우르는 거시적인 주제와 안건을 담고 있었다. ‘인간의 눈높이, 인간 중심에서 도시를 다시 바라보자’는 얘기다. 도시를 이루고 있는 요소를 떠올리라고 하면 대부분 건물과 거리, 자동차 순일 터,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이를 생각하면 헤더윅의 당연한 제안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헤더윅이 말하는 ‘인간 중심의 도시’는 어려운 이론이나 담론이 아니다. 이는 결국 사용자의 경험이나 느낌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그가 강조한 말은 ‘도시는 혹은 도시를 이루는 건축물은 만드는 전문가 시점이 아니라 직접 사용하고 바라보는 우리가(곧 시민이) 평가하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헤더윅은 그러기에 좀 더 본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도시·건축 전문가들은 그런 시민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니즈는 수백 만 가지다. 그 많은 사람들의 니즈를 맞추는 건 결과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도시(혹은 공공) 디자인은 가능한 많은 시민들의 편의와 수요, 잠재적 욕구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기에 솔직히 ‘잘 해도 본전’이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때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공공’의 개념이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도시에 살아가는 대다수에 관계되는 이슈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 시게루의 재난 건축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다른 의미로도 컸다. 반 시게루는 건축가나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나 제안에 의해 움직이지만 건축가 스스로 공공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재난 건축은 어쩌면 대다수에 해당하는 일은 아닐 수 있으나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반 시게루의 건축은 재난에 대처하는 임시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이후 영구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진, 해일, 태풍 등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이미 도시라는 하드웨어나 공공 재난 시스템 같은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얼마나 쉽게 붕괴되고 무너지는지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반 시게루의 재난건축 이전에, 재해·재난에 대비한 도시의 공공 시스템과 건축물, 항만, 도로 등의 하드웨어 또한 더욱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을 도시 계획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시킬 필요성도 더불어 중요하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휴머나이징은 거창하지 않다

최소현 네이버 디자인&마케팅 부문장, 이달우 마음스튜디오 대표,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공동대표의 강연은 그들이 몸담은 기업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건축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례를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최소현 부문장이 소개한 네이버 사옥과 연수원 등은 네이버의 공간이 사원 중심 나아가서 인간 중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완공된 지 10년이 되어 아직까지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각 춘천’과 같은 연수원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용자 행동과 심리 분석이 부족하기에 추가적인 장치를 지속적으로 공간에 집어넣기 마련인데, 네이버의 공간은 미리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대비했다. 사용자의 심리나 행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예상하고 만든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의 차이는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달우 대표와 송인혁 공동대표의 강연은 하드웨어적 콘텐츠보다 ‘무엇을 위해’와 ‘누구를 위해’ 디자인과 콘텐츠를 구성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많은 수의 사람들 혹은 목표했던 특정 세대의 사람들이 충분히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이며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마음스튜디오의 어린이를 위한 독서 앞치마나 유니크굿컴퍼니의 프로젝트는 일종의 ‘흥미 유발’과 ‘즐거움’의 요소를 만족시키는 사례로 주목해 볼 만했다. 

도시 단위의 공공 디자인은 해외 사례를 좀 더 심도 깊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윤미진 코넬대학교 학장이 전개한 크고 작은 도시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그리 거창하거나 대대적인 변화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다 취하려는 식의 전개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여러 니즈의 뾰족한 접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러기에 디자이너를 비롯해, 인문학자, 철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디자인서울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들 강연자들의 강연 주제는 서울시에서 내세운 ‘디자인서울2.0’ 정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와도 밀접한 연결성을 갖고 있었다. 서울서체, 서울빛을 비롯해 한강 둔치의 벤치, 반려동물을 위한 설치물, 등산객이나 워킹족을 위한 산과 산책길 디자인 등 디자인서울2.0은 새로운 도시의 니즈, 시민들의 수요와 편의를 위한 다층적인 전략으로 구성됐다. 포럼을 통해 디자인서울2.0을 소개한 최인규 서울시 디자인 정책관이 언급했듯, 해외 사례나 주요 기관들의 전략을 참고로 했으나 결국 중요한 건 서울 시민의 생각이고 서울 시민이 원하는 편의일 것이다. 그에 따라 디자인·기능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정책과 결정으로 그 범위를 좀 더 세분화해 진행하는 논의가 더욱 중요해졌다. 강연은 이를 위한 서울시의 노력이 더욱 활발해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시민의 눈으로

모든 강연이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었다. 특히 거의 모든 강연자들에게서 나온 단어 중 하나는 ‘자연’이었는데, ‘아무리 자연을 구현한다 해도 이는 진짜 자연은 아니’라는 이달우 대표의 멘트에는 더욱 공감이 됐다. 건물이나 공간, 도로 그 어느 하나 진짜 자연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으며 가능한 자연과 인접하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가장 쾌적하고 자연 친화적이며 편리하고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이 명제가 ‘인간 중심’을 이야기하는 ‘휴머나이징’이 아닐까. 

올해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은 서울시가 디자인서울2.0을 선포한 것과 더불어 거시적인 주제를 다채롭게 잘 풀어낸 자리였다. 5시간에 달하는 포럼을 함께한 이들은 대부분 디자인이나 건축, 도시 관련 종사자와 학생들이었지만 일반인이 들어도 충분히 흥미롭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강연의 내용이 크게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러기에 강연 후 업로드 된 강연자들의 강연 내용도 한 번쯤 정독해보기를 권한다. 도시 디자인에 대한 담론은 포럼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며, 다른 누구도 아닌, 시민인 ‘우리’의 솔직하고 가감없는 ‘휴머나이징’에서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한 관심도 이제부터 더욱 활발해지기를, 그런 장이 더욱 다채롭게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상희 

콘텐츠 기획자·디자인 전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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