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헤더윅 : 감성(Emotions)을 담다
토마스 헤더윅 : 감성(Emotions)을 담다
"감성(emotions)은 건축물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축물에 깃든 감성은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사람들 간의 교감을 형성합니다. 건축물이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대합니다 – 토마스 헤더윅."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영국의 다빈치’라는 수식어로 통할 만큼, 동시대 영국 디자이너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천재적인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20년 동안의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만의 독보적인 천재성과 열정적인 인간미가 어우러진 ‘헤더윅’다운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토마스 헤더윅은 도시 계획, 건축, 인테리어 그리고 제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작업을 경계없이 넘나들며 더욱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 1994년에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를 설립하였다. 런던의 킹스 크로스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200여명에 달하는 건축가, 디자이너, 공예가 및 기술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건축물에 인간의 감성과 영혼을 담고자 하는 특별한 접근방식을 가진 헤더윅의 건축 세계는 그가 자라온 환경과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런던의 구슬 가게에서 보석 장신구들을 만드는 일을 하시던 어머니 곁에서 어렸을 때부터 구슬들을 세고 만지면서 놀던 그는 재료(materials)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제작(making)과 공예(craft), 그리고 발명(invention)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그에게 물성(materiality)과 제작(making)을 통해 영혼의 충만함(soulfulness)이 가능함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고, 동시에 이와는 반대로, 그가 주변에서 보고 경험하는 큰 규모의 건물들이나 인쇄물에서 보여지는 건물들은 다소 영혼이 없는(soulless) 듯한, 그러면서도 차갑고(cold) 감성이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헤더윅은 건축물의 디자인에서 감성(emotions)이라는 매우 본질적인 요소가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본인만의 철학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헤더윅 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스타일과 남다른 건축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헤더윅의 ‘롤링 브릿지(Rolling Bridge)’를 도서관에서 책으로 처음 접했을 때, 난생 처음 보는 형식의 브릿지가 보여주는 간결하고 창의적이며 스마트한 매커니즘에 정말 큰 놀라움과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롤링 브릿지(Rolling Bridge) 디자인은 ‘이 브릿지가 어떤 모습일까’ 보다는, ‘이 브릿지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 좋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런던의 수많은 브릿지들은 브릿지 하부를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통로를 만들어 주기 위해 브릿지의 가운데 부분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오프닝(opening)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헤더윅의 시선에서 본 수많은 브릿지들의 오프닝 메커니즘은 감성(emotions)이 결핍된 채, 브릿지 자체로 온전히 아름다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브릿지 가운데가 뚝 부러지며 두 동강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헤더윅은 이와는 다른, 좀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열리는 브릿지를 만들어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인상 깊은 오프닝 작동 방식의 브릿지를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롤링 브릿지의 가장 먼 양 끝 지점들이 서로 키스하게 되는 메커니즘’ 이라고 한다.
상하이 엑스포(2010)의 영국 파빌리온은 “the SEED CATHEDRAL”이라고도 불린다. 이 프로젝트는 토마스 헤더윅이라는 디자이너와 그의 스튜디오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당시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헤더윅 스튜디오는 다른 서방 국가들 예산의 절반만으로 축구 경기장 크기의 사이트(site)에 영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할 만한 인상적인 영국 파빌리온을 설계해야만 했다. 여러 면에서 도전의 크기가 거대했던 만큼, 더욱 ‘헤더윅’스럽게 재미있고 독창적인 영감들과 아이디어들로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런던에 위치 한 세계 최초의 주요 식물관에서 마침 그 시기에 전 세계 식물 종의 25%를 수집하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헤더윅은 이에 영감은 받았고, 이 식물관의 프로젝트와 연계된 매우 영국적인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결심한다. 모든 사람들은 나무와 꽃을 좋아하지만, 씨앗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헤더윅은 그 만의 독보적인 철학과 시야로,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작은 씨앗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일종의 씨앗 대성당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의 근원이지만 매우 작은 사이즈라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이 씨앗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차에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호박 속에 갇힌 공룡의 DNA를 보고 씨앗을 귀중하고 아름답게 전시할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헤더윅’스러운 또 하나의 아이디어 원천은, 왼쪽 사진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국수처럼 뽑아져 나오는 인형의 수많은 머리카락들이 그 힌트였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씨앗 대성당 건축의 주요 요소인, 씨앗을 품은 아크릴 광학 막대들-소위,
머리카락들(transparent optic rods)이다. 이 7.5 미터의 투명한 아크릴 막대 형태의 머리카락들은 각기 그 끝부분에 씨앗들을 하나씩 품고 있고, 파빌리온 실내에서 벽을 뚫고 실외로 뻗어져 나가듯 설치되었다. 실내에서는 씨앗을 전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실외에서는 바람이 불면 따라 움직이는 유기적인 형상으로, 66,000개의 씨앗들을 귀중한 60,000개의 광학 머리카락에 가두어 이 직사각형태의 상자를 통해 자라게 하는 것 같은 원리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아크릴 막대 머리카락들을 통해 낮에는 바깥의 채광이 실내로 전달되고, 밤에는 인공조명을 품고 있어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성(materiality)과 질감(texture)를 중시하는 ‘토마스 헤더윅’다운 디자인으로, 이 씨앗 대성당은 상하이 엑스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프로젝트의 예산이 적었던 만큼, 영국 파빌리온은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그 이외의 공간은 별도의 건축물이나 콘텐츠 없이 비우기로 결정되어 디자인 되었고, 이 비움의 디자인 역시 성공적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여지듯, 씨앗 대성당 이외의 광활한 빈 공간들은 엑스포 동안 하루에 백만명이 이용하는 공공 장소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밖에도 매우 많은 헤더윅의 작업들이 있다. 불과 얼마 전 마무리 된, 도쿄 중심부의 6헥타르 복합 용도 개발인 Toranomon-Azabudai, 런던의 새로운 Google 본사, 운전할 때 공기를 정화하는 전기 자동차인 Airo의 디자인을 포함하여, 현재 10개국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Google 최초의 지상 캠퍼스인 Bay View와 뉴욕 허드슨 강의 공원 및 공연 공간인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 케이프 타운의 Zeitz Museum of Contemporary Art Africa, 그리고 Coal Drops Yard(런던 킹스 크로스의 새로운 주요 리테일 지구) 등 끊임없는 열정으로 전 세계에서 그의 철학을 실현화하고 있다.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기존의 분류를 거부하고, 고정된 교리나 이론적 접근이 아닌, 인간의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고,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면서 감성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공간과 건물, 매력적인 장소와 사물을 만들고자 한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와 접근들로 수많은 프로젝트들 중에 가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도 있지만, 실용성에 감성과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를 담아내는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헤더윅의 열정과 마음은 항상 사람(Human)을 향해 있다.
- 이주호(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