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건축가, 반 시게루 : 공간과 건축의 힘
행동하는 건축가, 반 시게루
공간과 건축의 힘
디자이너가 인류에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만약 지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맞아(영화에 꽤나 자주 등장하는 지구 멸망이나 인류 종말 등의 소재처럼)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소수의 집단만 피난처에 갈 수 있다면 건축가 혹은 공간 디자이너는 그 집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는 곧 건축가 혹은 공간 디자이너가 우리 사회에, 인류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가벼운 반문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집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단 피난처부터 건축가나 공간 전문가가 없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울뿐더러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혼돈의 도가니가 되지 않을까?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쓴 책 <행동하는 종이 건축>(2019년, 민음사)의 부제는 ‘건축가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다. 건축이나 공간, 디자인 관련 분야에서가 아닌 대중에 입장에서 보자면 건축은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유형의 존재다. 랜드마크로, 거점 또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존재으로서의 건축으로 대부분 인식한다. 건축의 수명은 또한 꽤나 길기에 아니, 더 정확히는 길어야 하기에 건축에 대한 경험은 단편적이거나 구체적이기도 힘들다.
모두를 위한 건축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떠한 건축이나 공간에 대한 판단은 매우 직관적이고 또 그 경험치 또한 꽤나 정확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건축(공간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목적의 대상 혹은 주체는 건물과 공간을 사용하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어떤 상징이나 건축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무엇이 아닌 사용자의 진짜 쓰임을 위한 건축 말이다. 반 시게루가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며 ‘종이 건축’을 통해 보여준 피난처가 그랬듯, 그에게 건축은 심미적 인상이나 상징성이 아닌 효율과 쓰임이다.
디자이너·건축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199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한 반 시게루는 고급 주거와 문화공간, 미술관, 리조트, 상업공간 등 전세계 랜드마크가 된 수많은 작품을 만든 건축가다. 하지만 반 시게루가 더 주목한 건 소수의 클라이언트가 아닌 다수의 시민들이었다. 그는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면서 종이와 천을 활용한 건축에 눈을 돌렸다. 친환경적이며 설치와 철거가 용이한 소재로서의 연구는 곧 공간이나 건축에서 고민하는 ‘쓰레기 배출’에 대한 이슈와도 연관된다. 또한 ‘종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종이로 만든 건물은 영구적인 사용도 가능하며 내구성 또한 강하다. 그는 위의 소재를 가지고 임시 거처나 종이 교회 등 재난 지역민들을 위한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르완다 내전(1994), 일본 고베 대지진(1995), 튀르키예 지진(199). 인도 구자라트 지진(2001), 아이티 지진(2010)등 재해와 재난이 생겨난 곳마다 직접 그곳을 찾아가 피난처와 교회, 성당, 보호소 등의 임시 건물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재난 현장에 반 시게루가 만들어낸 건축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치유와 안식을 위한 공간이 되어왔다. 이를 통해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정의를 강렬히 각인시킨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파키스탄 홍수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위한 건축을 만드는 중이다. 몇 차례 포럼이나 세미나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데, 지난 해 제주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건축사대회’ 초청강연에서 ‘멋있을 건축물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을 때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건축 프로젝트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달리 말하면 ‘공공의 환경’이다. 재난과 같은 극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공공의 공간, 건축 환경에도 해당된다.
반 시게루의 공중화장실 프로젝트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 도쿄에서 펼쳐진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건축가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반 시게루를 비롯해 안도 다다오, 쿠마 겐고, 마키 후미히코 등 일본의 대표 건축가들이 도쿄 시부야 시와 일본 재단이 함께 의기투합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총 17곳의 공중화장실이 탄생했다. 당시 건축가들은 ‘위험하고 지저분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공공화장실이 아니라 저마다의 쓰임새와 심미성을 갖춘 흥미로운 화장실을 선보였다. 반 시게루는 공원 두 곳에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바뀌고 사람이 없을 때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시스루 화장실’을 선보였다. 사용하고 나온 사람이 얼마나 청결하게 사용했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이 건축은 이후 철거되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명물이 되었다.
해외의 사례가 아닌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각 도로의 휴게소에 화장실이 지속적으로 리뉴얼되는 사례를 보아왔다. 한층 밝고, 깨끗하며 넓은 화장실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휴게소가 아니라 안전하고 안심되는 휴게소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실제로 1999년부터 행정안전부와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개최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수상작 면면은 외관적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특성, 행동 패턴 등을 고려한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해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받은 진영복합휴게소는 중정을 두어 화장실 특유의 폐쇄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방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녀 화장실 비율을 1:15로 두고 기나긴 줄을 서지 않도록 (특히 여자 화장실) 남자 화장실의 좌변기 50%를 필요에 따라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공공 시설물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공공 시설물이 중요한 건 그 자체로 해당 지역 혹은 국가의 이미지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을 방문한 이들이 서울의 장점이자 이미지 중 하나로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가득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등을 꼽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들은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물이 가져야 할 기능성, 보편성, 심미성 등의 요소를 포괄한다. 이런 하드웨어 하나하나가 주관적인 ‘인상’과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것 또한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지하철을 갈아타며 느낀 안내의 미흡함이 사이니지 하나로 해결되기도 하고, 교통 신호 대기 장소에 햇빛이나 추위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도 그렇다. 결과물의 심미적인 면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시가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인상, 시민들을 보호하고 배려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서울시와 반 시게루의 만남
얼마 전 서울시는 반 시게루와 안전·디자인 부문에 있어서의 지속적인 협업을 이야기했다. 공공을 위한 건축에 대한 그의 의지는(실제로 반 시게루는 공중화장실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고) 서울시의 ‘더 나은’ 공공디자인에 대한 니즈와 맞물려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서울시는 공중화장실에 대한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지침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공중화장실이 사용의 편의나 안전, 청결 부분에서 개선되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디자인 언어와 사용의 불편함,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하는 바, 이에 따라 공중화장실의 안전 사고 예방과 사용자 편의를 더욱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그동안의 공중화장실 공간계획이나 보행폭, 재질, 안내 사이니지 등의 세부사항까지 리서치를 통한 적용지침을 수립하고 공공뿐만이 아니라 민간 화장실에도 적용하고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개발되는 적용지침을 통해 건축설계나 심의, 관리를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 전체 과정에는 공간과 건축, 유니버설디자인, 범죄예방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문을 맡을 예정이다.
공간과 건축의 힘
앞서 언급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물이나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의 수상작들 면면을 보자면 사용자 편의에 기반한 세심한 설계는 물론 심미적 측면으로도 뛰어난 작품이 많다. ‘특정 공간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어떤 곳에서는 몸가짐이 달라진다’는 느낌 등 환경심리학 측면에서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외부에 보이는 나무의 높이, 머무르는 공간 천장의 높이 하나도 효율성이나 심리적 환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기에 (다행인건) 공부가 안되거나 일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면 나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능률이 오를 수 있는 환경인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환경탓’만’ 할 수는 없겠지만.
디자인과 건축은 목적성을 가진다. 목적성을 상실한 디자인은(특히 건축은) 도시의 풍경을 해치고 낭패불감(狼狽不堪)의 결과물이 될 수 있다. 반면 디자인과 건축을 통해 재난을 막을 수도 범죄를 예방할 수도 있으며 효율성 개선, 정서적 안정감과 긍정적인 환기를 일으킨다. 그것이 특정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목적이라면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특히 최근 많은 공간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느낀 건 그들이 디자인을 통한 사회적 책임, 설계와 시공 등 디자인 전 과정에서의 환경 문제를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공공디자인은 크리에이티브, 혹은 사용자 편의와 별개로 심미적인 인상과 결과물 자체의 퀄리티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결과물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의지와 바람은 있지만 여러가지 제도, 행정적 측면의 이유로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쉽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믿는다). 디자인의 힘, 협업과 존중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그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체감하는 지금 앞으로의 공공디자인은 분명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도시의 땅과 길을 밟고 공간을 사용하며 스쳐가는 건물 하나까지 마주하고, 그 인상과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오상희
콘텐츠 기획자·디자인 전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