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와보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로 - 디자인서울 2.0

누구나 와보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로

디자인서울 2.0


‘우주’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Space’가 공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는건 꽤나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철학자들 또한 우주를 ‘공간’의 하나로 해석해왔다. 흔히 ‘공간’이라고 칭하는 곳을 단지 집이나 학교, 사무실, 카페 등 어떤 물리적 벽이나 경계가 있는 장소로만 한정 짓지 않는다면 ‘도시’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시디자인은 넓은 의미의 공간 디자인에 가깝다. 우리 모두 도시 안에서 경계를 짓고 땅을 밟으며 살아가고 있기에. 도시 곳곳의 모습은 곧 우리 공간의 모습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대중교통이나 차를 타고 걷고 다니며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도시’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만난다. 서울시가 지난 6월 20일 공개한 <디자인서울 2.0 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디자인에 대한 서울의 관심과 노력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바, 그 시작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추진된 <디자인서울 1.0>이다. 구조 중심의 하드웨어 도시가 아니라 콘텐츠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 도시로 방향성을 설정한 이 시기에는 전국 최초로 도시디자인 조례 제정, 디자인서울총괄본부 조직 설립, 디자인 가이드라인 설정 등,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달라진 모습은 우리에게 한층 정돈된 도시의 풍경을 선사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정화된 거리의 벤치나 휴지통, 일관된 공공시설물이나 버스승차대 등의 교통 시설물 모두 <디자인서울 1.0>의 결과다. 우리가 체감하는 변화를 넘어 ‘도시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보다 쉽게 정립시켜준 이 시기를 통해 서울은 글로벌 도시경쟁력이 6위까지 상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2012년, 모리재단 기준). 


<디자인서울 2.0 프로젝트>가 뭐지? 

가장 서울다운 풍경은 무엇일까? 여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산과 강, 최신의 건물과 오래된 건물에 전통 건축이 뒤섞인 풍경은 서울 시민 뿐만 아니라 서울을 방문한 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서울의 독특한 모습이다. 한강과 더불어 곳곳에 조성된 숲길, 산책길은 물론 자전거나 도보로도 다니기 좋은 다리와 문화 공간 등은 서울 시민이라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수두룩할 만큼 인프라가 충분하다(심지어 서울에는 무려 67개의 산이 있다). 


<디자인서울 2.0 프로젝트>는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2.0 버전은 기존의 ‘소프트서울’을 이어받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액티브서울’을 비전으로 세웠다. 말 그대로 활력 넘치고 역동적인 서울이다. 서울시는 이 비전에 ‘공감, 포용, 공헌, 회복, 지속가능성’의 다섯 가지 키워드를 내세워 55개의 세부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다섯 가지 키워드는 일종의 포괄적 정의지만 정리하자면 안전하고 쾌적하며 지속가능한 동시에,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 서울만의 개성을 더 드러내겠다는 의지다. 


즐겁고 재미있는 디자인  

고속도로에서 트럭 뒤에 동그랗게 뜨고 있는 왕눈이 스티커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뭐지?’ 했는데, 이는 단순히 귀엽다고 붙인 것이 아니었다. 이 왕눈이는 뒷차의 졸음 운전을 방지하는 동시에 야간에는 반사판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뒷차의 정신 환기와 졸음 운전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누구에게나 재미있으면서도 쉽고 효과적인 디자인 적용 사례다. <디자인서울 2.0>에는 이와 같은 펀디자인이 담겨 있다. 누구나 보아도 기분이 환기되고 재미있을 할 만한 ‘쉬운’ 디자인을 의미한다. 공공디자인은 특히 경직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많지만 쉽게 접근하고 편안하며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장치로서 더 많은 요소를 ‘펀(fun)’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범죄예방디자인’을 적용한 마포구 염리동의 거리 개선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좁고 어둡고, 밤에는 절대 가면 안될 것 같은 환경이었던 그곳은 사이니지 개선, 밤길에 대비한 라이트 디자인 등을 통해 범죄율과 ‘위험한 동네’라는 인식 모두 가파르게 내릴 수 있었다. <디자인서울 2.0>에서 제안한 메시지 중 ‘즐거운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것이 또한 디자인의 힘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를 위한 

몇 년 전, 버스 하차벨 디자인이 여러 차례 바뀐 적이 있다. 현재도 버스마다 조금씩 디자인이 다른데(모두 적용이 되지 않은건지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하차벨 위치나 크기, 누를 때의 강도와 압력 등이 누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점을 고려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당시 사용자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었는데, 무엇보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누구나’ 누르는 버스진동벨처럼 <디자인서울 2.0>의 포용디자인은 아이부터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포괄하는 융합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누구나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장소, 기존에 특정 세대만 이용했던 공간의 역할 확장 등도 해당된다. 도시에 사는 시민 각자가 약간이라도 느끼는 불편, 조금이라도 보기 싫었던 외관, 사용상의 편의 등을 일일이 파악하고 또 적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중요한 건 지속적인 실험과 노력으로 서울은 점차 깨끗하고 편리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디자인서울 2.0>을 통해 계획 중인 프로젝트 중 2024년 예정된 ‘초세대놀이터’는 그런 점에서 더욱 궁금하다. 시범사업을 통해 우수모델과 가이드라인 개발 예정인 ‘초세대놀이터’는 아이 뿐만 아니라 성인, 노년층, 장애인까지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 기대되는 건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1500만 반려인구를 위한 공공 시설물과 인프라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이다. 지금도 한강 산책길, 도보길에 가보면 그 누구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정책이 반갑기까지 하다. 실제로 이미 공원이나 산책길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배변 봉투가 설치되어 있거나 반려동물을 위한 놀이터 계획이 예정된 곳이 있는데, 공간과 서비스 또 디자인 측면에서 반려인구를 위한 달라진 편의 공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느 도시보다 도보, 자전거, 따릉이와 같은 시민 편의 시설에 대한 거리 계획과 적용을 빠르게 실행해온 만큼 <디자인서울 2.0>은 서울 시민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을 이번에도 효율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서울의 일상, 거리 곳곳을 예술적 영감의 시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함께 포함되는데, 이는 다양한 예술 실험과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곳으로 도시 자체를 화이트큐브로 삼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공공미술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은 건 그만큼 ‘모두를 위한 예술’로서 가져가야 할 부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고 또 감도 좋은 작품으로 도시를 채워주길 바란다. 

   

<반려견 공존 공원>

<반려견 공존 놀이터>

<반려견 장례 및 추모공간>



미리 예방할 수 없을까? 

최근 장마로 인한 재해와 사고가 많다. 천재지변이라고 하지만 특히나 인재로 인한 사고인 사례가 많은데, 안전과 위험 예방은 공공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22년 공사현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픽토그램 디자인 6종을 개발했고, 올해 시발주공사 현장 62개소에, 내년부터는 시 전체 공사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또한 2023 재해예방 안전디자인을 수립,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디자인을 확대해 ‘2024 공간 안전디자인 정책’을 통해 취약지역이나 지하광장, 역이나 터미널 등의 다중밀집시설의 안전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디자인가이드를 수립하고 있다. 여기에 기후 변화에 따라 기존과 다른 자연재해, 도심의 상황에 따른 수해나 산사태 등의 위기 상황에 대한 안전 가이드도 재정립할 예정이다. 해당 전략은 시민인 우리가 좀 더 눈여겨봐야 한다. 시정 전반 뿐만 아니라 디자인 협력, 플랫폼 등으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서울을 지향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은 관련 자치 단체, 기업, 시민 모두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며, 브랜딩, 공간, 서비스 등 디자인서울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기 위한 모든 프로세스에서의 디자인 관점이 담겨있다. 브랜드 디자인과 공간 컨설팅을 통해 탄생한 ‘책 읽는 서울광장’과 같은 명확한 결과물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시민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디자인 

비만은 더 이상 나의 탓만이 아니다. 비만 인구가 늘어가는 해외에서는 도시 곳곳에 운동 기구와 운동 공간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었다. 뉴욕과 영국이 대표적인데, 개인의 문제라고 여겼던 비만까지 도시 차원에서 고려한다는 건 공공디자인의 영역이 얼마나 세분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디자인서울 2.0>에서는 공공 환경과 안전을 넘어 시민 개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디자인까지 전개한다. 이런 세부 전략들이 단순히 정책을 위한 정책, 지침을 위한 가이드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가 체감하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혹은 불편할 수 있는 부분 모두를 세심하게 살펴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또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결과물을 체감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새로 바뀐 버스 정류장의 도착 표시나 정거장 표시는 더 깔끔하고 스마트하지만 서체가 너무 작은 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러기에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피드백 적용은 <디자인서울 2.0>의 전략만큼 중요할 것이다.

 

<디자인서울 2.0>의 실천과 결과에는 더 큰 의무와 책임도 더한다. 이제 국내 뿐 아니라 한국과 서울을 주목하고 있는 전세계에 좀 더 영향력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서울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인식 뿐 아니라 세계도시 서울로서 도시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그래서 경험하고 싶은 콘텐츠와 인프라가 기대되는 이유다. 


오상희 

콘텐츠 기획자·디자인 전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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