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도시는 필연적인 삶의 공간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스카이라인과 광장, 공원, 자연환경 등은 대부분 과거의 제도화 된 도시계획 과정의 산물로, 지금까지 도시 공간은 기능적으로 구획되고 정해진 쓰임에 따라 기능하도록 계획되어 왔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산업적 경쟁력을 갖춘 도시의 곳곳은 오늘날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성’, 그리고 ‘사용자 중심 접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미래의 도시는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 또는 시민들의 생각과 필요에 따라 교류와 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되어야 하고 노후공간과 환경을 개선하여 도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테이트모던 뮤지엄 더 하이라인 에버그린 브릭웍스
방치되어 있던 화력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30년된 고가철도를 걷고 싶은 거리와 공원으로 변화시킨 미국 뉴욕의 더 하이라인(The High Line)은 도시의 노후공간을 사람들이 쉽게 상호작용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 재활성화 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시민들의 각종 기부와 후원, 기타 대관수익 등으로 운영되는 더 하이라인은 오늘날 뉴욕시의 주요한 공원으로 부상하면서 원예, 명상걷기, 텃밭 가꾸기, 운동, 댄스, 네트워킹 등 다양한 연령층과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시민과 민간단체의 협력과 자발적 관리를 통해 공공공간의 가치와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RDM 캠퍼스는 네덜란드 조선업계를 대표하던 RDM 선박 제조회사의 폐부지를 로테르담 응용과학대학교의 학생과 창업 기업들이 활용하게 되면서 지역 생산성을 향상시켰고, 캐나다 토론토 도심에 위치한 에버그린 브릭웍스(Evergreen Brick Works)는 폐쇄된 벽돌 공장을 환경 활동의 허브이자 지역 농민들의 커뮤니티 및 마켓으로 재건하여 도시 내 활기 넘치는 공공공간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오늘날 각 도시들은 도시의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기반의 참여를 중심으로 지역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 삶의 질에 기여할 수 있는 양질의 공공공간을 창출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사용자 중심의 접근과 디자인으로 건물이나 지역을 더욱 활성화 시킨 사례들을 통해 향후 커뮤니티 기반의 공공공간 조성의 필요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을 위한 공공공간 프로젝트, 파킹데이(Parking day)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파킹데이 프로젝트는 도시의 설계와 건설, 활용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파킹데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도로변 주차 공간을 일시적으로 용도 변경하여 이를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공공공원 및 사회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글로벌 공공 참여 프로젝트이다.
도시의 도로는 대부분 차량 이동과 주차에 적합하도록 계획되어 있고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이를 피해서 도로의 일부만을 이용하게 된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의 아트 스튜디오 Reber Group은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전체 면적의 20~30%가 차도로 활용되고 있고 인도를 제외한 공간의 70~80%가 차량 이동 및 보관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공공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차량이 점거한 공간을 조금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고민하였고, Trust for Public Land와 협업하여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주차공간 중 일부에 잔디와 나무, 벤치 등 사람들의 휴식을 위한 요소들을 배치하고 두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공공공간을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오늘날 21개국 140여개의 도시에서 매년 9월 셋째 주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차 공간을 공원으로 활용하는 파킹데이 프로젝트의 시초가 되었다. 현재 각 도시의 파킹데이는 주민의 아이디어와 커뮤니티의 참여를 통해 지역의 특수성에 맞도록 변형되어 게릴라 예술 프로젝트와 전시, 디자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파킹데이를 위한 매뉴얼은 세계 각 국으로 확산된 파킹데이 이벤트가 주차공간 및 도시 내 유휴공간을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사용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파킹데이 실행 방법 및 과정을 안내한다. 이 매뉴얼은 사람들이 단순히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여 파킹데이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공간 설치 및 해체 시 도시환경을 해치지 않고 각 지역과 참여자의 상황에 맞는 캠페인이 유연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과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그라운드플레이(Groundplay)
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2009년 Pavement to Parks 프로그램을 통해 시정부 차원에서 파클렛(Parklet, 도로변 미니공원)을 확장해 나갔다. 현재는 도시의 작은 공간들을 휴식공간 및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임시 설치물을 구축하는 ‘그라운드플레이(Groundpla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라운드플레이는 주차공간이나 옥상공간, 과밀도로, 공터 등 도시 내 다양한 공간을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모일 수 있는 활기찬 장소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거리에 설치되는 다양한 창작설치물들은 프로젝트 계획에 따라 단기간 설치 후 철거되거나 길게는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2016 Market Street Prototyping Festival (marketstreetprototyping.org)
그라운드플레이의 사례 중 ‘2016 마켓스트리트 프로토타이핑 페스티벌(2016 Market Street Prototyping Festival)’은 디자이너, 커뮤니티 그룹 및 학생들이 제작한 30개의 설치작품을 통해 마켓스트리트(Market Street)를 보다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 보행로로 만들기 위해 실행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이 마켓스트리트(Market Street) 보행로에서 보다 활기차고 긍정적인 경험을 원한다는 의견에 따라 시는 수년간 광범위한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수집하였고, 커뮤니티 주도 디자인을 통해 도시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 결과, 독특한 몰입형 숲(Pop-up Forest)은 조경가의 설치물을 통해 도시의 공공 영역 내에서 나무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벽화로 장식된 보행로 도서관(The Sidewalk Library)은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고무 매트 카펫과 업사이클로 만들어진 뉴스랙과 책꽂이를 설치하여 헌책과 새 책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축가와 뮤지션의 협업으로 설치된 입체 사운드 스케이프(wav.field/artsy-urban soundscape)는 마켓 스트리트 거리의 풍경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심미적인 구조의 경량 입방체 공간을 만들고, 구조물 내부 스피커에서 몰입감 있는 3차원 사운드를 재생하여 시민들에게 명상적 경험과 휴식의 순간을 제공하였다. 이 사운드스케이프 설치물은 바쁘게 보행로를 통행하는 시민들이 거리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일상을 멈추고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였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행동이 도시 내 유기적인 모임 또는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2016 Market Street Prototyping Festival의 보행로 도서관과 사운드 스케이프 (marketstreetprototyping.org)
마켓스트리트 프로토타이핑 페스티벌의 사례는 다양한 협업과 신속한 실험의 이니셔티브 실행은 도시에 머무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감각적 공공공간 경험을 제공하고, 대규모 도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거나 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라운드플레이는 ‘혁신은 누구나 영감을 받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시정에 직접 관여하는 시 정부 관계자 이외에 민간 파트너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지역사회의 필요와 열망을 해결하는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를 독려한다. 그라운드플레이의 활동 정보가 기록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https://groundplaysf.org)은 ‘그라운드플레이 프로젝트는 이웃과 커뮤니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평범한 시민들에서 시작된다’는 슬로건과 함께 커뮤니티의 파트너, 시 기관 및 자금투자자의 강력한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스트리트 랩(Street Lab)의 유니 프로젝트(Uni Project)와 공공공간 프로그램
뉴욕의 비영리 단체 스트리트 랩(Street Lab)은 뉴욕 시 전역의 공공공간과 지역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공유하는 비영리 단체로, 도시환경의 개선과 더불어 커뮤니티 구성원의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주로 팝업 방식을 이용하여 뉴욕 시 전역의 공원과 광장, 기타 공공 장소에서 커뮤니티가 쉽게 구현할 수 없는 공공공간 조성 솔루션에 집중하며, 접근 방식은 중소기업과 아티스트, 지자체 및 공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형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2011년 스트리트 랩이 처음 선보인 유니 프로젝트(Uni Project)는 뉴욕 시 거리에서 저소득층 어린이 및 시민들에게 학습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이동식 도서관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뉴욕시 주택청(New York City Housing Authority, NYCHA)과 함께 자원의 형평성과 지역사회 안전에 초점을 맞추었고, 중간 또는 저소득 지역사회에 맞춤 설계된 구조물을 설치하여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 경험을 제공하였다. 약 4년의 시간 동안 51개 지역에 설치된 독특한 디자인의 야외 열람실은 선반에 놓여진 책들과 드로잉 보드, 좋은 품질의 미술재료 등을 구비하여 지나가는 시민들이 마음을 열고 자발적으로 학습행위에 참여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지침과 규정을 구비하기 보다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여 도시의 시민들이 학습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교육을 도시 생활의 즐거운 영역으로 인지하도록 한 것이다.
스트리트 랩은 ‘디자인은 커뮤니티 호스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담겨있으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동식 열람실의 디자인 및 설계 과정에서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또한, 뉴욕 시 전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팝업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해 건축가, 산업디자이너, 제작자, 예술가 및 교육자와 협업하였으며 이렇게 개발된 이동식 열람실 모델은 현재 다른 도시에 모방되거나 확장될 수 있도록 키트로 제작되어 배포되고 있다. 키트는 360 전면에 책과 자료를 수납할 수 있는 자석이 부착된 모듈구조인 유니큐브와 양면으로 펼쳐지는 접이식 롤링 유니카트, 반투명 폴리프로필렌으로 견고하고 가벼운 유니벤치로 구성되어 있고 필요시 이들을 자유롭게 연결하거나 해체하여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2020년, 스트리트 랩은 수년간 틈새 공공공간에서 교육 서비스 인프라를 제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연령대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시민들을 포용하면서 신속하게 조립 및 분해가 가능한 두 가지 높이의 테이블 디자인 솔루션을 추가로 도출하였다. 또한, 팬데믹 이후 지역의 열린 공간을 활성화 시키고 어린이를 위한 안전한 핸즈프리 놀이공간을 조성하고자 노터치 장애물 놀이시설 키트를 개발하였다. 최근에는 PLAY NYC, READ NYC, DRAW NYC 등 스트리트 랩의 키트를 활용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학습과 놀이, 교류활동이 감소한 아이들과 커뮤니티 사회문제 해결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도시들은 사회적 변화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매순간 조금씩 새로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우리는 도시가 발전할수록 인프라와 하드웨어가 견고해지고,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과 공공공간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경쟁력과 잠재력, 그리고 사회구조적 문제점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사례에서 나타나듯 잘 만들어진 공공공간은 도시에 머무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이 되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새로움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도시에 활력을 부여한다. 시민들의 필요에 의해 조성된 도시 환경이 그들의 참여와 교류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공존을 이어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파킹데이와 그라운드플레이는 이상적인 형태로 도시의 공공공간을 활용하고 있고, 스트리트 랩의 프로젝트는 도시 내 공공공간 기반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키트를 제작하여 이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 내의 크고 작은 공간과 콘텐츠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교류를 발생시키는 힘이 있다.
디자인의 활용과 거버넌스의 구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근본적 원인에 접근하여 불편함을 개선하고 다수를 포용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구체적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시민의 일상에 유용한 공공공간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용자, 즉 시민들의 필요와 의견 수렴이 필수적이다. 커뮤니티 중심으로 공간을 재구상하고 재창조하는 활동에 디자인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구성원들의 역동적인 참여가 접목된다면 도시 곳곳의 공공공간과 이를 채우는 콘텐츠들은 지역사회의 가치를 높이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서울 시내에서도 창의적 관점에서 공공공간의 콘텐츠를 생성하고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역량이 구축되어 보다 진정성 있고 개방적인 시도들이 반복되길 기대해본다.
글 | 홍승희 (홍익대학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