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자원 재순환과 지속가능한 디자인
오늘날 인류의 삶의 체계는 경제적 성장의 산물이며 주요 도시들이 직면해온 문제점들은 주로 빈곤이나 질병과 같이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에 의해 해결 가능한 영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급격한 성장과 발전은 도시 문제의 질적 다각화를 초래했고, 지역을 불문하고 발생하는 지속 불가능한 현상과 사회적 불균형에 따라 인류는 성장의 한계와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개념은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에서 최초 언급되었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1987)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정의하였고, 최근에는 경제, 경영, 기후, 환경, 국가 정책 및 민간 활동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https://sdgs.un.org/goals)
2015년 UN회원국들은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17개의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선정하였다. 세계 기구가 정의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은 경제와 사회, 환경 등 인류가 삶을 영위함에 있어 필요한 전 영역에 걸쳐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여건을 저하시키지 않으며 서로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UN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목표를 선정한 이후,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는 인간과 자원의 공생, 개발과 보전의 조화,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형평을 추구하며 광의적 관점에서의 실질적인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관련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국가와 도시차원의 정책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민간과 시민사회, 그리고 개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기회를 발견하고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실천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 시민들의 일상에 밀접한 영역을 중심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접근 사례를 알아보고자 한다.
도시의 소비생활과 환경파괴
현대사회는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으로 고도화 된 소비사회이다.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생산과 소비를 주축으로 한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달의 결과물이며 소비사회의 주체인 사회구성원들은 개인화된 소비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상징적 소비를 반복해왔다. 과다한 생산과 소비활동은 한정된 지구 자원의 훼손과 고갈, 환경 파괴를 유발하였고, 소비에 비례하여 발생하는 일회용품과 포장재, 식품과 공산품의 폐기물 처리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체감할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전 세계 20억톤으로 집계되었던 폐기물 배출량이 2050년에는 34억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이에 일각에서는 전 세계 인구 증가 추세에 따라 생산과 소비, 폐기로 이어지는 선형경제구조가 환경을 파괴를 가속화하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https://sdgs.un.org/goals)
UN에서는 인간의 소비와 생산활동이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2015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열 두 번째 목표로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Sustainable products & consumption)'을 선정하였다.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은 제품과 서비스의 전 생애주기에서 자연자원과 유해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폐기물과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경제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부 내용으로는 천연자원의 효율적인 사용,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식품폐기물 및 유통과정의 식품 손실량 감축, 폐기물의 친환경적 관리, 재생 및 재사용을 통한 폐기물 발생량 감축 등이 포함된다. 해당 항목이 목표로 하는 자원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조성하며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양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즉, 제품생산단계에서부터 제품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폐기물 및 각종 유해요인의 발생량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수리하고 수선하는 삶, 네덜란드 리페어 카페
사용하던 물건이 낡거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를 폐기하고 새 것으로 교체해서 사용하곤 한다. 새롭고 좋은 기능을 갖춘 물건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대량생산 시스템은 제품 가격의 하락을 이끌었고 이에 우리는 점점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리는 삶을 살고있다. 물건을 쓰고 버리는 자연스러운 소비활동은 한정된 자원 속에서 영속적으로 반복될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전 세계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지속가능발전 측면에서 이러한 과잉소비패턴을 자각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음에 공감하고 있다.
물건의 수명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일부 기능을 고쳐서 쓸만한 물건으로 바꿀 수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과 과잉소비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긴 리페어 컬쳐(Repair Culture)는 2009년 10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리페어 카페(Repair cafe)로 시작되었다. 시민들이 고장난 물건을 가져와 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리페어 카페는 처음에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운영되다가 시민들의 긍정적 반응에 힘입어 정기적으로 운영하게 되었고, 2011년 1월에는 리페어 카페 재단을 설립하여 네덜란드 정부 지원금 및 각종 기금을 재원으로 본격적인 수리 문화 확산을 위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리페어 카페는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네덜란드의 비영리 단체인 플랫폼21(platform21)의 리페어 선언(Repair Manifesto)의 영향을 받았다. '기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고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맥락의 이 선언은 고장난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는 것이 재활용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여러 산업의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수리 문화 확산에 기여하였다. 리페어 카페는 수리문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러 시민들에 의해 주변 도시로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2021년 1월 기준, 영국과 벨기에, 독일, 인도, 일본 등 세계 각지로 확산되어 한해 4만여개의 제품이 수리되고 3만여명의 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리페어 가이드 (https://www.repaircafe.org) 전 세계 리페어 카페 분포 (https://www.repaircafe.org)
리페어 카페에서는 수리 기술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이 수리를 진행하고 제품에 대한 수리정보를 기록하여 전 세계 리페어 카페 및 소비자, 제조업자와 공유한다. 오프라인 공간과 더불어 리페어 카페의 온라인 플랫폼은 리페어 카페 운영 및 참여 유도에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리페어 카페의 온라인 사이트는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국어로 일부 제품별 수리 가이드를 제공하고,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수리용이성을 위해 제품의 부품 수명을 늘리고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의 만남과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수리 가이드를 찾거나 수리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비대면 세션이 제공되기도 하였다.
리페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수리를 통해 제품을 재사용하는 방법은 선형경제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임에 공감하며 전문가와 함께 물건을 고치는 방법을 고민하고 수명을 다한 제품을 새롭게 재탄생 시키는 업사이클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제품의 수명과 가격에 대한 논의, 지구와 환경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수리 문화는 지식을 교환하고 창의적 활동을 전개하는 방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리페어 카페의 활동은 무엇보다 자원과 환경에 대한 의식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버려진 물건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대상에 대한 가치를 재창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

이처럼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사용자들의 노력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제품의 개발 초기 단계부터 지속사용 가능성과 지구 자원의 상황, 생태계와 에너지의 균형을 고려한 설계와 디자인이 적용된다면 앞으로 제품의 수명과 수리가능성은 제품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건의 수명을 늘리는 핀란드의 재사용문화
이처럼 자원의 순환이 어려운 선형경제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폐기단계의 제품을 수리하거나 재활용, 또는 재사용하여 지속적인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과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재활용과 재사용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활용(recycle)은 수명을 다한 제품을 기술을 통해 가공 또는 합성하여 원래의 물성에 변화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다른 재료와 혼용하거나 전혀 다른 제품의 원료로 만들어 재사용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재사용(reuse)은 제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온전히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또는 약간의 보수를 통해 상태를 개선하고 이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고유의 재사용(reuse)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핀란드인들은 재사용의 대표적 유형인 중고물품 상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다. 핀란드의 중고물품 상점은 가격과 품목, 성별, 연령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 되어 있다. 기부형 중고상점부터 빈티지 상점, 공간대여형 셀프 상점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의 물건을 다른 누군가가 쓸 수 있도록 무상으로 기부한 상품부터 수리를 거쳐야 하는 제품들, 또는 조합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제품들이 일정한 수선과정을 거쳐 상품가치를 갖게 되면 다양한 중고물품 상점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간다.
또한, 중고물품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헬싱키에서는 매년 5월과 8월에 하루동안 자신의 물건을 동네의 공원과 골목, 공터에 가지고 나와 판매하며 즐기는 '청소의 날(Siivouspäivä)' 행사가 개최된다.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시민들에 의해 조직된 이 행사는 핀란드의 명물이 되었고, 이는 핀란드인들에게 중고문화가 평범한 일상이자 삶의 일부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핀란드의 재사용 문화의 정착과 중고물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배경을 살펴보면, 1980년대 핀란드 환경부에서는 당시 6~7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여 제품의 재사용 운동을 지원한 바 있고 이후 핀란드 경제 대공황(1991~1993)시기에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된 재사용 문화와 더불어 핀란드 대도시지역에서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재사용센터는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수리와 환경에 대한 교육을 계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순환경제 및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모든 기업과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개념과 순환경제의 필요성, 자원절약과 같은 전문가 강의와 환경교육을 제공하고 워크샵 프로그램을 통해 자원에 대한 인식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핀란드의 사례는 공공이 주도하는 정책적 차원의 실행과 시민들의 행동이 자원의 재사용 시스템을 문화로 정착시켰고, 이로 인해 중고상점의 수와 관련업종 종사자들이 점차 늘어나 제품 수명의 연장과 재사용문화의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원순환의 실천을 유도하는 서울 새활용플라자
헬싱키의 재사용 센터와 유사한 사례로 국내에는 시민들에게 자원순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각종 제작 및 연계활동을 지원하는 서울 새활용플라자가 있다. 서울 새활용플라자는 새활용(Upcycling)에 대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인식을 넓히고 새활용 기반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2017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자원의 순환과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소재와 디자인, 제조, 유통을 일원화하여 전문적인 시설을 갖추고 새활용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각종 교육프로그램과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시애틀 시 정부는 자원의 재활용을 위해 '리유즈 시애틀(Reuse Seattle)'이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리유즈 시애틀은 시애틀 시와 도시 내 주요 스포츠 경기장 및 레스토랑, 공연장, 영화관 등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여 재사용 가능한 포장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결성한 민관파트너십이다. 앞서 다룬 바와 같이 다회용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사용주기에 따른 보관, 세척, 배송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시애틀 시의 공공 유틸리티 담당부서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재사용과 리필, 교체를 위한 협력체인 'PR3'와 비영리조직 'RESOLVE' 등과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공과 민간이 상호운용 가능한 재사용 생태계 시스템의 설계 표준 개발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식품 서비스 산업과 지구 및 공중보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하는 공동의 사명을 지녔으며 도시와 기업이 서로 더 큰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폐기물 관리 회사와 재사용 서비스 제공업체, 소비재 회사 및 레스토랑, 워싱턴 환경 위원회와 같은 파트너 목록을 확장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 | 홍승희 (홍익대학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