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x 서울’, 서울시정에서의 디자인의 역할
‘디자인 x 서울’, 서울시정에서의 디자인의 역할
‘Design x Seoul’, The role of design in the public administration of Seoul city
김규리, Kim Gyu Ri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담당관, Director/Design Policy Division,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올해 서울 디자인 국제포럼의 주제는 디자인X서울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도시 서울에 디자인이 결합되었을 때 시민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민들은 어떤 도시에서 삶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누구나 존중 받고 좋은 장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디자인 시정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시간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시간, 공간, 인간 등 세상에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사이가 본질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인간, 공간, 시간의 간은 한자 원문으로는 '사이'의 의미이고 이 사이는 단계를 뜻하기도 하고 다양한 상태와 상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도시를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의 역할은 이 '사이'라는 스펙트럼에서 다양한 처지와 상황의 시민들을 더 잘 이해하고, 또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일상과 도심의 환경을 더 풍부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제공하며 이들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친숙함과 새로움의 질적 시간들을 채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면 그동안 서울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가졌는지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불과 13, 14년 전 서울의 모습은 획일화 된 아파트 중심의 경관과 어지러운 간판으로 인한 시각공해, 도로 시설물이 점령한 보도 환경으로 어지러웠고, 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변 공간으로의 접근이 단절되어 있었으며 국적 불명의 건축물이 난립하고 있어 현재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도시 환경은 많은 변화를 거쳐왔고, 이제는 소프트시티의 비전 아래 나아가야 할 디자인 시정의 방향성에 대해서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약자와의 동행 (Human-Centered)
첫 번째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디자인의 역할입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약자와의 동행' 정책에 디자인을 접목하고자 합니다. 다원화되고 선진화 된 사회일수록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이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양한 시민을 위한 유니버설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연령과 성별, 장애 유무, 국적 관계없이 포용적인 환경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이를 제도화한 것이 주요한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each and all'을 주제로 특수성을 가진 시민들에게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고 또 이를 보편화 시킴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편리하고 감동을 주는 디자인으로 확장될 수 있는 사례들을 선도적으로 발굴해 왔습니다. 특히 교육청과 연계해서 유니버설 디자인 교과목을 초등학교에 인성창의과정에 편성하면서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환경에 대해 이해하는 활동이 인성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올해 말 개관 예정인 유니버설 디자인 가상 체험관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들을 메타버스에서 좀 더 실감나게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상태적 시민들 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 시민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외출 시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아빠의 상황이나 혹서기·혹한기에 에너지 빈곤 시민의 상황, 장애·비장애 형제와 함께 나들이를 하는 가족의 상황, 그리고 올여름 수해 이재민들의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사용자 중심의 리서치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행태 분석에 서비스 디자인의 페르소나 기법 등을 시정에 적극 도입할 계획이며 앞으로 약자와의 동행에 디자인 정책을 통해서 소외되는 시민이 없도록 세심하게 시민의 일상을 챙겨 나가겠습니다.
공공공간 만들기 (Public Place Making)
도시를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의 역할은 이 공간 사이사이라는 스펙트럼에서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일상과 도심의 환경을 더 풍부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집과 일터를 오가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의 층이 다양해 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동안 서울은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경관 디자인에 힘써 왔고, 도심 속 광장, 한강에 인접한 공원의 조성 그리고 야간경관 수준 또한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인 DDP를 조성하였고, 미디어 파사드를 연출해 그 장소성을 공고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지친 시민의 일상에 휴식을 주기 위해 한강에 설치된 구름막은 뭉게구름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강의 작품을 감상하고 경험하며 수변 공간을 즐기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작품들이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때로는 활성화되지 않은 공간을 명소로 탈바꿈 시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인 '홍제유연'은 버려진 공간에 대한 활성화와 더불어 생활 속 문제 해결을 공간 개선이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또한, 주거지역에 디자인을 입혀 환경을 개선하고 시민의 안전, 안심을 유도하는 생활 디자인과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신체 강화, 오감 자극, 사회적 교류 활동을 유도함으로써 치매를 예방하는 백세 정원, 공공 건축물과 복지시설의 공간 개선 등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유무형의 서비스가 디자인으로 한층 더 가시화되고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민의 일상에 휴식과 충전이 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이 공간들이 각기 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눈높이에서 통합적으로 디자인되어 연속적으로 경험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공공 공간, 녹지, 보도 등이 각각 개별적으로 설계되고 시공 되어 보행 경험의 질을 높이기에 어려움이 있는데 향후 도시의 개발에 있어 디자인 전략이 초기부터 함께 세워질 수 있도록 통합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추억·의미·새로운 경험의 시간들 (Public Place Making)
도시를 풍요롭고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친숙함과 새로움에 질적인 시간들을 디자인해 나가야 합니다.우리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크로노스의 시간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을 살아간다고 하는데, 크로노스의 시간이 소모적으로 소진되는 일상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어떤 이벤트에 의해서 또렷하게 각인되는, 의미가 보여지는 질적인 시간입니다. 도시에서 질적인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연결과 강화가 필요합니다. 제 아무리 심미성이 뛰어난 제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가 좋지 않다면 만족도가 떨어지고, 결국 이 제품을 유용하는 시간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콘텐츠가 강화된 디자인은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감동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매우 유효한 전략입니다.
최근 시립 노원복지종합관에서는 어르신의 소원 여행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또는 신체적인 이유로 직접 방문할 수는 없지만 어르신들이 살아생전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장소들이 있었습니다. 시민디자인 거버넌스팀이 해당 장소들에 대신 방문하여 VR 영상을 제작하였고, 이를 어르신들께 선물해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리워하신 장소는 때로는 고향이고, 때로는 젊은 시절을 바친 일터이며, 때로는 청과상을 했던 재래시장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저희는 질적인 시간을 붙잡았고, 어르신들의 기쁨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미래학자들은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계를 넘나들며 유의미한 경험을 기획하는 것이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이 매우 주요한 전략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에 앞으로 디자인정책관은 시에 여러 부서들과 협력해서 시각, 제품, 공간 등 유형의 디자인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시민의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무형의 디자인도 함께 기획하고 견인해 나가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고자 합니다.
도시는 성장하는 유기체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디자인 시정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시간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포럼의 주제와 같이 다른 분야, 또는 다른 주체들과 결합되었을 때 그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자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시정의 최종 목표는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만족과 감동을 촉발시키는 것입니다. 앞으로 시민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구현하는 데 있어 금번 포럼과 같은 문의와 아이디어들을 더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