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통한 공유 생태계 설계

해당 콘텐츠는 2022 서울디자인국제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건축을 통한 공유 생태계 설계 


제프 리솜, Jeff Risom

(샌프란시스코 겔 건축 최고혁신책임자)




인간은 선형적인 사회적 동물로,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다른 여러 장소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게일(Gehl)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이러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을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하면서 관계적 회복탄력성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을 인지하였고, 인간과 동물, 자연, 식물, 환경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작업과 그 접근법은 연결성, 친절함, 정중함과 모두를 위한 품격 있는 경험에 근간을 두고 있고, 이러한 접근법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공장소의 벤치와 작은 테이블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을 위해 마련된 사소하지만 관대한 제스쳐와 디자인들은 결국 모두를 위한 연결성과 친절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파악하고 자연과 도시 또한 인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인간과 환경, 자연의 관계가 풍요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계적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과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생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토양, 물, 공기, 기후.. 이 모든 것들이 생명입니다. 생명과 삶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명쾌하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생명과 삶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후, 건물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건축에 대한 인식과 방식은 단지 건축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와 마을을 설계할 때 건물이 도로와 어떤 방식으로 접하는지, 바람이나 그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해결하고자 합니다. 건축에 있어 인간의 삶과 공간, 건물의 순서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디자인 과제는 매우 명확합니다. 이는 바로 '모든 생명이 번창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도시 설계자 또는 건축가로서 우리가 이런 과제에 대해 모든 정답을 알 지 못하고, 심지어 우리가 예측하는 인간의 행동이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빈번합니다. 그래서 게일은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실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생명과 삶의 번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게일의 구성원들은 건축가이자 조경가이고 동시에 사회학자이면서 인류학자입니다. 우리는 민족지학을 마스터 플래닝에 연계하거나 도시설계에 사회학을 접목시킵니다. 이런 다학제적 시도는 실무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협력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기후를 경험했고, 도시의 유형에 따라 풍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코펜하겐과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지사를 두고 있는 게일은 각 도시와 지역에서 항상 삶, 공간, 건축물의 순서에 따라 여러가지 디자인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Place changes culture, Culture changes place

코펜하겐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인구의 3분의 1정도가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등교합니다. 도시의 날씨가 평균적으로 아주 좋은 편이 아닌데도 시민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이유는 자전거가 도시에서 가장 빠르고 쉬운 이동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차로 가득했던 도시가 이러한 변화를 맞이한 것은 1962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도로를 인도화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다소 급진적이었던 변화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주요 도로가 인도화 되면서 도시 내 많은 공간이 공용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차장과 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공용 공간은 수변까지 확장되었고 이후 도시의 수변 공공공간에서 이루어진 시민들의 많은 활동들은 도시의 문화를 변화시켰습니다.





 

하버배스(Harbour Bath,바닷물을 막아 만든 한구 수영장)와 같은 시설을 비롯하여 전동보트와 카약을 빌려주는 곳이 생기고, 가장 고가의 아파트 바로 옆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공공간이 조성되면서 수변을 따라 고가의 주거시설과 공용 공간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수변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은 수상스포츠를 즐기면서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코펜하겐의 날씨는 여전하지만 사람들은 가을이나 비가오는 겨울에도 수변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완전히 새롭게 접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veryday experiences shape overall quality of life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은 무엇일까요? 보통 도시의 관광객이라면 빅뱅, 콜로세움, 금문교와 같은 관광 명소를 떠올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관광명소 방문 보다는 현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같은 도시 경험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거주인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즉 일상을 위한 공간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코펜하겐의 현대미술관 루이지애나는 아름다운 건물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곳으로 매년 6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입니다. 해외와 국내 관광객을 포함하여 코펜하겐에서 10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방문객 수에 주목해 보았을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매일 자주 찾는 동네의 슈퍼마켓도 매년 60만명이 방문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이 매일 방문하는 일상의 장소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를 적용한다면 루이지애나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것 만큼이나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공간에 또 다른 사례는 바로 버스정류장입니다. 코펜하겐의 교외지역에 위치한 한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버스 탑승을 대기하는 동안의 경험을 개선하면서 대기오염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일상의 공간에서 존중과 돌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역시 중요한 일상공간 중 하나입니다. 코펜하겐 뿐만 아니라 덴마크 전역에서 학교 운동장을 개방하고자 하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학교의 담을 허물어 주말에 지역사회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거나 주민들이 축구를 하는 등 누구나 찾아와서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의 디자인도 매우 중요합니다. 





 


Systems for flourishing life operate across silos

다음은 정책의 사일로, 즉 영역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시정에는 여러가지 정책적 사일로, 즉 칸막이가 존재합니다. 각 부서가 철저히 구분되어 있고 예산과 연간계획이 모두 별도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정책 실행과 운영,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도시의 디자인은 단일부서와 기관이 총괄할 수 없습니다. 


약 4년전, 런던의 시장은 정치적으로 매우 대담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아동 비만 증가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됨에 따라 대중교통의 경유, 또는 환승 지점에 모든 패스트푸드 광고를 금지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아동 비만율이 특히 높은 런던 남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게일은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패스트푸드 광고 금지 이외에도 다른 환경을 통해 아동 비만을 줄이고 나아가 도시 내 아동들의 건강과 행복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12~14세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역사회에 익숙한 분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만나는 장소를 선택할 때 자유롭고 비교적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질문지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여 그들이 직접 사진을 찍거나 자신의 삶과 생활의 경험을 기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관찰도 진행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여 청소년들이 주로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런던 남부의 거의 모든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패스트푸드점은 버스정류장의 연장이자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고 두 장소에서 청소년들은 모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런던시가 버스 정류장에 광고 포스터를 떼는 정책은 매우 좋은 접근이었으나 버스 정류장 가까이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다각적사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광고가 야기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버스 정류장과 패스트푸드점의 근접성입니다. 이는 결국 아동 비만을 줄이기 위해 교통과 공공 보건분야가 협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관찰과 질문을 통해 도심의 어떤 장소들이 편안함을 제공하는지 살펴보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접목시켜 생각할 수 있는 다각적인 관점이 필요합니다. 



Social infrastructure facilitates shared value

사회의 인프라는 소프트 인프라, 생태 및 물리 인프라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들 중 사회적 인프라가 어떻게 공동의 가치를 제공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회적 인프라는 도서관이나 공공공간을 의미합니다. 앞서 사례에서 제시되었던 하버배스(Harbour Bath)나 스케이트장과 같이 활력과 상호작용, 안녕을 제공하는 공간을 포함하며 때로는 주민센터, 어린이 박물관, 카페 등의 건축물이나 사람들이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카페의 테라스 등 일부 야외공간도 포함됩니다. 사회적 인프라는 도시의 공동 가치의 핵심으로, 프로젝트의 비용을 지불하는 주체, 도시 투자자나 개발자, 사용자, 이해당사자, 일반 시민들 모두 사회적 인프라의 수혜자가 됩니다. 따라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모든 주체들의 필요와 관심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탠포드 지속가능성 학교(Stanford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와 게일이 함께 했던 프로젝트는 이러한 개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탠포드는 최고의 학생과 교원, 실리콘밸리의 이웃과 비즈니스 파트너, 정책입안자, 지역사회를 아우르고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기후변화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70년만에 처음으로 설립된 이 학교는 캠퍼스에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우리는 캠퍼스 내 환경이 사람들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35명의 참가자들에게 모바일 앱을 제공하고 캠퍼스 내를 이동하면서 소속감을 주거나 편안함을 제공하는 요소를 촬영하여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거나 주석을 달고 동선을 추적하여 기록을 통해 일상의 경험을 맵핑하였고 우리는 AI 기술을 이용해 데이터를 분석하여 캠퍼스 내 어떠한 요소들이 매력적으로 작용하여 환대 받는 느낌을 제공하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 요소는 무엇인지 파악하여 이를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공감의 기회를 확장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도시의 문제를 각각 다르게 바라보고 있음을 이해하도록 합니다. 이를 통한 통찰은 견고하고 바람직한 디자인 원칙을 수립하도록 돕고, 나아가 이 대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와 참여자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Massive change occurs incrementally

점진적인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실제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16번가는 1960년대 유명한 건축가의 재설계를 통해 비교적 잘 운용되고 있는 덴버시의 주요 도로입니다. 미국 최초의 시내버스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고, 약 1.5km의 이 구간을 통해 매일 4만 5000여명이 이동하고 있으며 여기엔 도로를 따라 걸어서 이동하는 보행자도 포함됩니다. 이 도로는 이동을 위한 구간으로 잘 운용되고 있지만, 리테일을 위한 유통 여건 부족과 노숙자, 마약 유통 문제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로에 대한 유지관리 비용이 꽤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 도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에 게일은 이 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여름의 어느 일요일, 우리는 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버스를 우회시키고,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여 시민의 여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었으며 야외 카페를 조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5~7배 증가하였고, 우리는 일회성 이벤트를 추가적으로 2회 더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버스 노선 우회에 따른 시민의 불편함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회사와 거리의 부동산 소유자,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실제로 현장을 함께 경험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워크숍 이후 참가자들은 일회성에 그쳤던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자는 아이디어와 함께 버스 이용객의 불편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결국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이 거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점진적으로 도출하여 공유할 수 있었고 이 임시 프로젝트를 통해 쌓인 경험을 토대로 1억 5000만달러 규모의 보수 프로젝트가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게일의 작은 실험적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만에, 처음 상상했던 규모 그 이상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이는 협업과 학습의 단계를 거치는 점진적인 프로세스가 궁극적으로 큰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Learn by Doing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행동으로 배우고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디자인 프로세스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소규모 투자로 비즈니스 케이스를 입증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는 이러한 프로세스는 삶을 위한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와 도구의 활용 또한 중요합니다. 게일이 사용하는 'Eye Level City' 앱은 일련의 도구 중 하나이며 우리는 디지털 도구와 현장조사, 토론 등 아날로그 방식의 도구를 모두 활용합니다. 도구의 활용은 다양한 시각에서 삶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고, 실제 사람들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디자인 전략을 수립하거나 변화를 모색하도록 합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삶의 경험에 대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발제를 통해 장소가 문화를 형성하고, 매일 발생하는 일상의 경험이 중요하며 번영을 위한 시스템에는 영역의 구분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인프라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존재할 수 있고 커다란 변화는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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