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간에서의 유니버설디자인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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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2015 유니버설디자인 국제세미나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발표자: 남민 (서울특별시 은평병원장)
서울시 은평병원과 유니버설디자인의 시작
정신과 폐쇄병동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지 않다. 위험한 질환이라는 사회적인 낙인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장애인을 둘러싼 의료적 환경 또한 그러하다. 정신과 시설은 낙후된 곳이 많은 것이 사실이며 몇몇의 차이는 있겠으나 여전히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환자는 ‘제공받는 사람’ 이라는 일방적인 공급자 위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시장의 은평병원 방문으로부터 시작된 의료 환경 변화의 필요성은 실제 병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서울시 은평병원은 정신과 전문병원의 특성상 환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도 치료진이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는데, 병원 이용 시민들은 가장 민감한 부분이 타인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드러냈고, 약 40일의 짧지 않은 평균 입원 기간 동안에 문제제기를 가장 흔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치료를 책임지는 의료진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다.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지만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강박과 격리의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의료진들은 할큄, 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해관계자와 사용자 사이의 다양한 문제점과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서울시 은평병원은 ‘각 잡힌 병원’, ‘불편한 병원’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병원 같지 않은 병원’, ‘입원해보고 싶은 병원’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였다.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환경의 변화로 환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이 달라짐에 따라 치료의 진전과 마음의 편안함을 느껴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형성되도록 서울시 은평병원은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의료공간에서의 디자인
현재 의료 영역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지만 사회의 안전망과 같은 공공재적 성격을 띄고 있어 국가 차원에서 규제를 실시하고 있고, 따라서 수익 창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병원은 지금까지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거나, 고객 만족도를 높여 의료기관의 경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디자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 디자인을 한 부분이 많다.
2000년대 이후부터 병원 내에서 의료진들과 환자들을 직접 관찰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쳐 다양한 혁신적인 서비스 개선이 시도되고 있는데, 디자인적 사고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인 결과 문제를 찾아내고 혁신과 개선을 일으킬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정립하는 사례들이 급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의료공간에서 나타나는 최소한의 디자인 요인들은 휠체어 이용도로, 엘리베이터 설치 등의 지체장애인을 고려한 이용 접근성 해결, 점자출력, 음량 신호기 설치 등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확보, 의료기기 또는 의료용품의 유니버설디자인 개념 도입, 실내의 바닥면, 안락함을 위한 조명, 실내의 조도 정도, 병원이용환자의 동선, 공용공간 배려 등이 있다.
서울시 은평병원의 변화 지점
은평병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고자 시도했을 때, 많은 내부 인원들이 이미 공공 기관의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사례와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은평병원 건물의 리모델링과 기능 보강을 통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병원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하는 변화의 목표를 비교적 용이하게 수립할 수 있었다.
은평병원 리모델링에 필요한 내부 조사 결과 낙후된 시설이나 장비의 현대화, 전문적 치료 공간의 확대 개편, 공간의 재배치, 치료진과 환자의 안전성 확보, 편의시설 및 휴식공간 확대와 같은 의견이 모아졌다. 이와 달리 시민들은 은평병원이 정신건강 문제에 대비한 예방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폐쇄적 환경에서의 의료 기능 외에 지역사회 시민들이 친숙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 서울 시민의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편안한 이미지를 갖는 정신병원으로의 전환과 인식개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또한 병원에 재원 중인 환자들은 퇴원 후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입원 중심의 의료환경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시립 병원의 낙후된 이미지에서의 탈피, 휴식과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공간과 사회통합의 공간으로의 기능 재구성, 인간친화적인 정신병원으로의 자리매김, 의료진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난 환자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은평병원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병원에 도입하고자 하였고, 2014년 ‘함께 만드는 행복 공간 project 1.0’ 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하드웨어뿐만 아닌 소프트웨어까지 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병원으로 거듭나고자 목표를 수립하였다. 서울시 은평병원은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기 앞서, 다음과 같이 다양한 정신병원을 방문하거나 사례를 살펴보며 식견을 넓히고 변화의 계획을 구체화 하였다.
사례 1. 일본 코마키노병원 (駒木野病院)
일본 코마키노병원은 병원의 공간을 지역사회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누구나 함께하는 병원으로 거듭났으며, 가정과 같이 안락한 분위기를 실현하여 병원 이용자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례 2. 이바라키현립 코코로노 의료센터
사례 3. 한국 성안드레아병원
사례 4. 명지병원
서울시 은평병원의 서비스디자인 사례 – 낮병동
환자가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은평병원의 낮병동은 예전 장례식장이었던 곳을 낮병동으로 활용했기에 변경 전 삭막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6시간 동안 병원에 상주해야 하는 환자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변화와 개선이 시급하다 생각되어 첫 번째 사례로 진행하게 되었고, 변경된 낮병동은 크게 4개의 공간으로 구성하여 공간 활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A구역에 해당하는 출입구 부분은 강렬한 붉은색을 배치하고, 활동 공간인 B구역은 환자들이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음악 치료, 미술 치료, 합동 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C구역과 D구역은 개인적 휴식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나 색상별로 차이를 두어 환자가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서울시 은평병원은 앞으로 네 가지의 컨셉을 실현하고자 한다.
첫째, 이용하는 환자나 지역사회 시민들이 소원하면 이루어지는 공간,
둘째, 두드리면 열리는 공간,
셋째,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넷째 배려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병원은 병원 다워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은평병원은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이 되자’고 다짐한다. 이는 곧 기존 병원에서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여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병원, 이용하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사랑하는 병원이 되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