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와 사회 문제 해결 디자인 ;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을 중심으로

해당 콘텐츠는 2022 서울디자인국제포럼 2차사전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발표자: 강효진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공공 디자인 사업 팀장)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도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하였고, 시민들은 각자의 삶에서 코로나 블루, 사회적 고립, 강해진 혐오와 디지털 중독 등 각종 사회문제에서 기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경험하였습니다. 이처럼 다각적으로 나타나는 도시의 사회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부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울시는 사회적 회복력이 있는 시민 중심의 디자인 도시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고령화나 학교폭력, 범죄, 치매 등의 사회문제에 디자인을 도구로 효율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사회문제해결 디자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도시 내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 사회문제들은 주제에 따라 유연한 접근방법이 요구되고 있고, 다양한 양상의 프로젝트로 확장됩니다. 도시의 사회문제는 시민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고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들로 잔존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것 또한 시정이 노력해야 할 방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공공 디자인의 개념은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도시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설치된 시설물과 하드웨어 중심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도시가 시민의 일상과 삶의 질 문제에 주목하고 있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콘텐츠와 도구로 사회문제해결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공공 디자인의 범위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사회문제해결 디자인의 예시로 첫 번째 사례는 치매에 대응하기 위한 인지건강 디자인 분야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르신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매일 찾아오시는 복지관 주차장 공간에 <100세 정원>을 조성하여 일상에서 산책을 누리고 24절기의 식재를 경험하도록 하였고, 다양한 예술가나 작가들, 디자이너와 협업을 진행하여 작품을 통해 어르신들의 정서적 자극을 유도하였습니다. 공원이나 복지관 공간을 조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치매 경도 인지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개인의 주거공간에서도 신체와 심리적 건강과 관련하여 유사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구축하였습니다. 이처럼 서울시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콘텐츠 중심의 프로그램 구축과 인식개선에 필요한 교육까지 확장하는 방법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의 균형 있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지건강 디자인 > 금천구 청담종합사회복지관 100세정원 ©서울시


다음은 청소년들의 디지털 과의존에 대응하는 <마음풀> 프로젝트 사례입니다. 학생들의 일상공간인 학교의 유휴 교실에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여 청소년들이 수시로 식물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환경개선 사업이 아니라, 자연친화적 본능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이론을 적용하여 청소년들의 다감각을 자극하고 뇌발달을 활성화시키며 감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었습니다.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 > 마음풀 프로젝트 ©서울시

그 동안 공공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온 복지관과 청소년 관련 시설 대상 프로젝트에서는 문제 해결 과정에 여러 이해관계자를 직접 참여시켜 그들이 주체적으로 각자의 니즈를 직접 반영하고 콘텐츠를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 추후 서비스로 확장되어 운영될 때, 운영자들이 적극적으로 디자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체계적인 구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직접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
서울시는 시민이 직접 제안한 주제에 대하여 시민과 학생, 디자이너와 다양한 분야별 전문가,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여 공공의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의 프로젝트는 시민들이 직접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통해 공공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는 주제를 발견하거나 시민들 스스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진단할 수 있고, 혁신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할 수 있으며 커뮤니티의 소통, 이웃 간의 갈등 해소와 같이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해결책을 도출하게 됩니다.

- 올바른 의약품 폐기를 위한 <약쏙상자>


올바른 의약품 폐기를 위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 <약쏙상자>는 2021년 전개된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의 사례로, 폐의약품으로 인해 수질이 오염되는 현상에 문제 의식을 가진 한 시민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소재 3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폐의약품의 올바른 폐기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약을 쏙 집어넣는 상자라는 뜻의 '약쏙상자'를 만들어보는 활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활동은 어린이들이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실질적으로는 가정에서 모아 놓은 폐의약품의 폐기방법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활 속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은 주제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시민 제안을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고, 시민 투표 과정을 거쳐 최종 주제를 선정합니다.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그 과정을 공유하고 참여를 유도하며 확산과 수렴의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더 나은 문제 해결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시상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한편, 2015년부터 추진된 사업의 주제별 프로젝트 과정과 결과를 오픈소스의 백서로 정리하여 공유하고 있습니다. (https://news.seoul.go.kr/culture/files/2021/08/6107d7f5180603.35034425.pdf) 이처럼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은 여러 영역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기획이 가능하고 특히 젊은 세대들이 지닌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제 적용을 전제로 발전시켜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습니다.

-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는 공간 <가족의 거실> 
<가족의 거실>은 감염병으로 대면이 어려운 제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요양시설의 새로운 면회공간을 만든 사회문제해결 디자인의 서비스 기획 사례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병원 및 요양원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요양시설 입소자 가족들은 기약 없는 격리생활을 하게 되었고, 서울시는 이들을 위해 기존의 요양시설에 컨테이너형 공간을 확장하여 비대면 면회 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기존 면회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비접촉 면회방식의 부스는 이동과 면회과정에서 감염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요양시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인 시설과 장애인 이용시설에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노인요양시설 내 특별 면회 공간 ‘가족의 거실’©서울시

가족의 거실은 기존에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 사례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요양시설의 면회부스로 기능하면서 감염병이라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간 기획으로 시작되었으나, 자칫 기능적으로만 치우칠 수 있는 하드웨어적 접근에서 벗어나 어르신들의 일상생활과 경험에 대한 배려를 담고자 아늑한 가정집의 편안함을 재현하였습니다. 면회소로 기능함과 동시에 추후 개인과 집단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가족의 거실은 사랑하는 가족을 의미 있게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가치 있는 공간입니다.

ESG와 공공디자인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재무적 지표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기업을 중심으로 성립된 개념이자 기준이지만 이를 공공의 영역에 적용해본다면 실제로 ESG의 지표와 기준, 개념들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서울시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LOW(청정성 및 조화;Clean & Harmony), LESS(최적화와 효율성;Optimizing & Efficiency), LONG(내구성과 신뢰성;Durable & Reliable), LAST(분해와 재활용;Dissassemble & Recycle)의 개념을 포함하는 도시경쟁력을 위한 환경적 목표(GREEN DESIGN;4L)를 설정한 바 있습니다. 또한,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도시의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리소스들 중, 사회적 책임(Social) 분야에 해당되는 결과물은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지배구조의 영역은 추진가능한 실질적 전략과 방안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이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ESG 경영을 통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공공의 가치로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과 공익적 가치와 어떻게 호환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디자인은 여러가지 전략적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디자인 컨설팅 그룹 IDEO의 팀브라운(Tim Brown)은 "디자인은 서비스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 중 하나이며 같은 맥락에서 도시는 시민에게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서비스 디자인의 품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확언하였고, Nesta의 CEO 제프 멀건(Geoff Mulgan)은 "디자인 방법론은 프로토타이핑이나 시각화의 방법으로 참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공공 서비스의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정부가 더 나은 솔루션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공공의 영역에서 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디자인은 심미적인 요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도구이자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법론으로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역할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은 맥락을 중시하는 문제 정의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참여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시각화를 통한 효과적인 소통을 촉진하며 빠른 반복실행으로 사용자가 경험하는 서비스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양한 주체와의 협력과 융합적 해결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이 ESG 관련 주제에 접근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Why not SESGD?

발제를 마무리하며 서울이 추구하는 디자인 전략으로서 ESG를 SESGDesign로 재정의해보고자 합니다. SESGDesign은 다자간 협력모델을 구축하고 실험하는, 공신력 있는 퍼실리테이터로서 디자인의 가능성과 역할을 의미합니다. 짧은 논의를 통해 결론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위한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면서 공공이 ESG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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